오늘의 복음 묵상(요한 16,20-23ㄱ) - 부활 제6주간 금요일

부활 제6주간 금요일
사도행전 18,9-18
요한 16,20-23ㄱ : 그 기쁨은 아무도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떠나가는 것은 제자들에게 슬픔이 되겠지만 그 슬픔이 기쁨으로 바뀌게 되리라는 것을 산모의 비유를 들어 말씀하신다.
여자가 해산할 때 진통이 없이는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킬 수 없다는 말씀이다. 제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스승을 잃는다는 고통은 두려움을 느끼게도 하지만, 부활하신 주님을 다시 만나게 될 때는 고통이나 두려움은 모두 잊게 되고 다시 만난 기쁨만 남게 될 것이며, 그 기쁨은 아무도 빼앗아 갈 수 없다.
그 고통은 기쁨을 낳는 고통이다.
이것이 부활 의미이다. 주님께서 그들을 떠나시는 것은 태 안에 있다가 밝은 대낮으로 건너가는 것과 같다. 우리도 이러한 고통을 통하여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날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될 것이다.아기가 태어날 때, 어머니가 기뻐하듯, 우리도 장차 우리가 차지할 세상으로 태어날 때 교회도 기뻐한다. 교회는 우리가 그렇게 태어나도록 현세에서 수고하고 신음하며, 출산하는 여인처럼 근심한다.
교회는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을 천상 탄생으로 이야기한다.
아기가 어머니 태에서 나와 빛 속으로 오는 것을 태어난다고 하는 것처럼, 사람이 육체의 굴레에서 벗어나 영원한 빛 속으로 들어 올려지는 것을 태어난다고 표현하는 것은 적절하다. 우리는 성인들의 축일을 그분들이 돌아가신 날을 천상탄일로 표현하며 지내고 있다.그리하여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22절) 희생과 고통이 수반되지 않은 기쁨은 내 마음 안에 오래 남지 못하고 없어진다.
그러나 내가 희생과 고통을 바친 결과로 기쁨을 갖는다면, 그 기쁨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은총이기 때문에, 아무도 빼앗을 수 없다.
주님에게서 오는 이 기쁨은 그렇기에 자기가 바친 고통을 잊게 하고, 자기가 바친 고통보다도 더 큰 보상을 받은 것 같아 주님께 감사드릴 수 있게 된다. 이때, 우리는 하느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갈 것이며 하느님의 지혜로 가득 찰 것이다. 이것으로 하느님과 더 깊은 일치를 이루는 기쁨을 갖게 된다. 이것이 모두 부활하신 주님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고통을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느님 앞에 나아가는 데는 고통이 없으면 나아갈 수가 없다. 이 고통과 희생은 하느님의 뜻을 이루고, 실천하기 위한 것이다. 그 고통은 내가 극복해야 할 나 자신과 싸움이다. 나 자신과 싸움이 가장 큰 희생이며, 고통이다. 이 고통을 바칠 수 있을 때, 새로운 생명인 기쁨이 우리에게 태어날 것이고, 우리의 고통을 모두 잊게 할 것이며, 새 생명은 나를 하느님 앞에 더 가까이 이끌어 줄 것이다. 이러한 삶을 충실히 살아가야 할 것이다.
- 조 욱현 토마스 신부님 강론 글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