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 묵상(마태오 5,17-19)

연중 제10주간 수요일
1열왕기 18,20-39
마태오 5,17-19
"율법의 완성"
복음의 다른 부분에서 보면 예수님은 율법이 규정하고 있는 손씻는 규정라든가,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을 금했음에도 불구하고 병을 고쳐 주는 것 등, 사실상 율법의 파손자라는 죄목으로 십자가에 못 박혔는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내가 율법서나 예언서의 말씀을 없애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없애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천지가 없어지는 일이 있더라도, 율법은 일 점 일 획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일 획, 일 점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폐하려 오지 아니하고 완성하려는 율법은 무엇이고, 예수께서 바리사이, 율법학자들에게 그토록 책망하시었기에,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기까지 한 율법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분명히 똑같은 한 종류의 율법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닌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율법"이란 말은 네 가지를 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1) 십계명을 율법이라는 의미로 사용함.
2) 구약성서의 첫번째 5권, 즉 모세 5경의 말씀들을 말함.
3) "모든 성서의 말씀"을 의미하기도 하면서 "율법과 예언"이라는 말을 사용함.
4) 구전 율법이라고 해서 율법학자들이 만들어 낸 율법을 의미하기도 함.
그렇다면 율법 학자들의 율법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구약성서 그 자체라든가, 십계명 그 자체에는 규례와 규칙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있으며, 크고 넓은 원칙만을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한 사람, 한 사람, 또는 매사에 적용시키기 위하여 수천 개의 규정과 규칙을 만들어 지키라고 강요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자기들이 사소한 규정과 규칙을 문자 그대로 지키는 것이 삶과 죽음이 달려 있는 영원한 운명에 관한 문제라고 간주했고, 그것이 그들의 신앙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들이 만들어 사람들에게 지키라고 강요하는 그들의 말을 책망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율법이란 율법학자들이 만들어 낸 율법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구약성서 전체에 담겨져 있는 하느님의 말씀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의 교훈 전반에서 율법에 담긴 하느님의 뜻을 밝히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율법의 한 자 한 획에 집착하지 않고 과감하게 율법을 심화하시거나 폐기하셨습니다.
아울러 예수님은 유다교의 613가지에 이르는 계율들을 :
- 원수 사랑 (마태, 5, 43-48 :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아버지께서는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햇빛을 내려주시고... 비를 내려 주신다...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과
- 황금률 (마태 7, 12 :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그리고
-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 (마태 22, 37-40 :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둘째 계명도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이것이 이 두 계명이 모든 율법과 예언서의 골자이다").
이렇게 환원시키어 단순하게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풀이하신 율법(계율)을 행하고 가르치는 사람이야말로 하느님 나라에서 큰 사람이라 일컬어질 것입니다. 아멘.
- 서울대교구 김 웅태 요셉 신부님 강론 글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