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 묵상(요한 8,1-11)

사순 제5주간 월요일
다니엘 13,1-9.15-17.19-30.33-62
요한 8,1-11 :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이 돌을 던져라.
오늘 복음은 예수님 앞에 끌려온 한 여인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혔다는 그 여인은 죽음의 두려움 앞에 있다. 그러나 사실상 시험받는 이는 그 여인이 아니라 예수님이시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교묘한 함정을 만들었다.
만약 예수님께서 여인을 돌로 치라 하신다면 자비를 가르친 스승의 일관성이 무너지고, 치지 말라 하신다면 모세의 율법을 거스른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은 놀랍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7절) 이 말씀은 단순히 판단을 유보하라는 말씀이 아니다. 인간 누구도 자기 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드러내시며, 심판은 하느님께 속한 것임을 가르쳐 주신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 장면을 이렇게 요약한다.
“마침내 두 분만 남았다. 불쌍한 여인과 자비이신 그리스도.”(In Ioannis Evangelium Tractatus 33,5) 모든 군중이 떠나고 나자, 죄인과 구원자가 마주하게 된다. 죄로 얼룩진 인간과 무한한 자비이신 하느님만이 남은 것이다.
또한, 성 예로니모는 이렇게 말한다.
“주님께서는 죄를 변명해 주신 것이 아니라, 용서해 주셨다.”(Commentarii in Ioannem) 즉, 예수님은 죄를 무시하거나 눈감아 주신 것이 아니라, 용서를 통해 새로운 삶으로 부르신 것이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예수님의 “다시는 죄짓지 마라.”(11절)라는 말씀을 주목하며, 이것이 단순한 자비가 아니라, 회개와 삶의 변화를 요구하는 은총임을 강조한다.
“자비는 죄를 허락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에로의 초대이다.”(Homiliae in Ioannem 19,2)
교회는 이 복음 말씀을 통해 하느님의 정의와 자비가 절대 대립하지 않음을 가르친다.
교리서는 “복음은 하느님 자비의 계시 안에서 죄를 드러낸다.”(1846항) 또한 “죄를 인정하는 순간, 하느님의 자비가 우리를 새롭게 하신다.”(1847항)라고 한다. 우리는 종종 다른 이의 잘못에 쉽게 돌을 들어 올리면서, 자기 자신은 보지 못할 때가 많다.
주님은 우리에게 심판자가 아니라, 용서하는 형제와 자매가 되라고 초대하신다.
그러나 용서는 방종이 아니다. 예수님은 여인에게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11절)라고 하신 뒤 반드시 “다시는 죄짓지 마라”(11절)라고 하신다. 참된 용서는 새로운 삶을 향한 초대이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두 가지를 묻는다.
나는 다른 사람의 잘못 앞에서 얼마나 쉽게 판단하고 있는가?
나는 주님의 자비 안에서 내 죄를 회개하고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성 아우구스티노가 말한 것처럼, 결국 남는 것은 “불쌍한 인간과 자비이신 그리스도”이다.
우리 모두 이 자비의 눈길 안에서 다시 태어나고, 이웃을 향해 돌이 아니라, 자비를 건네는 삶을 살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 조 욱현 토마스 신부님 복음 강론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