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순 제5주간 금요일
예레미야 20,10-13
요한 10,31-42
예수님을 대하는 유다인들의 태도는 점점 격해집니다.
기회가 될 때마다 예수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하느님을 모독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말을 빌리자면 “사람이면서 하느님으로 자처”해서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역설적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이시면서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 그리스도의 강생을 나타내는 이 표현은 예수님께서 온전한 하느님이시면서 온전한 사람으로 세상에 오셨음을 고백합니다. 유다인들의 말처럼 예수님께서는 ‘사람이시면서 하느님’이시고,
‘하느님이시면서 사람’이신 분이십니다. 사실 이것을 우리의 이성으로 완전히 이해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어찌 하느님께서 온전한 사람이 되실 수 있으며, 어찌 사람이시면서 하느님이실 수 있겠습니까. 신비로만 받아들이는 것도 완전한 이해도 불가능해 보입니다.
이때 신비와 이해를 잇는 통로는 믿음입니다.
예수님과 유다인들의 논쟁은 믿지 않는 이들의 예를 보여 주면서 한편으로 예수님을 바라보는 당시의 다양한 시각을 보여 줍니다. 그 사이에서 필요한 것은 결단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사람들이 결단을 내릴 수 있도록 다양한 시각과 함께 예수님께서 누구이신지 여러 증언으로 끊임없이 알려 줍니다.
복음을 읽는 이들은 어느 순간 멈추어 서서 예수님께서 누구이신지 또는 어떤 분이신지 답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답을 우리는 신앙 고백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외아드님,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사람이 되시어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이십니다.
- 서울대교구 허규 베네딕토 신부님 묵상 글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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