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2코린8,1-9
마태5,43-48
우리는 성질이 까다롭고 마음이 편하지 못한 이는 대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찾고, 부르는 하느님의 마음은 오늘 복음에서 보듯이 누구나 대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 "원수를 사랑하라!"고 예수님은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가 "사랑" 하면 : 상대가 누구냐?를 생각하게 되는데,
1) 부모 자녀간의 사랑을 생각할 수도 있겠고,
2) 남녀간의 사랑도
3) 혈연 관계를 떠나 서로가 친한 사이에 온후하고 부드러운 애정이 깃든 사랑도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4) 그러나 오늘 복음이 가르키는 "사랑"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아가페적 사랑을 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아가페적 사랑이란? :
자신의 희생이 깃든, 그리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자비심이 깃든,착한 마음의 사랑이라고 간단히 표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생활하다 보면 내 자신에게 가장 소중하게 여겨지고 마음이 끌리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데, 그것은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정에서 생기게 됩니다.
그러나 내게 상처를 준 원수를 사랑하자면, 정의 문제를 넘어서 의지에 문제가 됩니다.
이것은 어쩔 수 없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히 일어나는 감정이 아니라, 의지적인 사랑은 하느님 말씀 때문에 착한 마음을 가지고자 결의, 결단을 해야 하는 것이기에 자기 희생이 동반됩니다. 이러한 사랑은 자연적인 감정을 가지고서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그런데 예수님은 그러한 사랑을 가지고 원수를, 미워하는 사람을 대하라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렇게까지 할 필요성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러한 사랑을 통해서만이 사람인 우리가 하느님을 닮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햇빛을 주시고,옳은 사람에게나, 옳지 못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 주심으로써, 모든 이를 당신의 자녀로 대하시며, 당신의 손으로 만드신 우리 중에 누구라도 멸망하는 것을 원치 않으시는 아버지 하느님을 우리가 닮아야 하는 것에 우리 믿음의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1 : 26의 말씀대로 : .. 하느님의 모습을 따라 창조된 사람인 우리가,하느님의 모습을 닮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사랑과 같은 아가페적 사랑을 가지고 원수까지도 대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의지적인 사랑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기도 함으로서만이 가능합니다.우리는 누구를 위해서 기도하면서 그를 미워할 수는 없습니다.왜냐하면, 나를 용서하시며 나에게 사랑과 은혜를 베푸시는 하느님 앞에서어떤 사람을 계속 미워하면서 기도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나를 마음 아프게 한 사람에 대한 미움을 확실하게 없애는 방법은 미운 그 사람을 위해서 진정한 기도를 할 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시면서 동시에 그를 위해 기도하라" 고 하시는 것입니다.
아멘.
- 서울대교구 김 웅태 요셉 신부님 복음 묵상 글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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