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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복음 묵상(마태오 13,10-17)

까치산 2025. 7. 24. 10:12

 

 

연중 제16주간 목요일

탈출기 19,1-2.9-11.16-20ㄴ    
마태오 13,10-17

"행복합니다(?)"

  
어제 복음의 묵상에서 여러분에게 뿌려진 고귀한 복음의 씨앗에 대해 자신의 생활과 연관시켜 묵상을 하셨는지요? 
오늘 복음은 어제와 연결되는데, 우리 자신 예수님과 제자들이 대화를 하는 그 장면에 함께 있다는 생각을 가져 봅시다. 예수님께서 선택하신 제자들은 우리가 알다시피 박학한 학자들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 곁에 둘러 앉아 자신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질문을 하고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둘러보시며 당신의 말씀을 털어놓으십니다.

그 때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께 우리에게는 당신의 속 마음을 털어 놓으시면서 “저 사람들에게는 왜 비유로 말씀하십니까?”라고 묻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이유를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기 때문” 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비유란 말은 ‘병립하다’ ‘비교하다’라는 희랍어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그래서 복음에는 항상 두 가지가 비교되어 나옵니다.
즉 일상생활이나 자연 안에 있는 어떤 사실이 신비나 종교적인 가르침과 비교되어 나옵니다. 이런 비교되어 나오는 말에서 종교적인 가르침을 알아듣는 것은 듣는 사람의 몫입니다. 이것은 듣는 사람이 종교적인 가르침을 배우겠다는 자세가 없으면, 그에게는 아무리 좋은 가르침을 많이 들려주더라도 그에게는 종교적인 가르침에 대한 깨우침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저 던지는 조그만 지식밖에 알지 못합니다.

 이처럼 무슨 일이든지, 어떤 배움이든지, 스스로 하겠다는 마음이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예수님 당시 당신의 복음 선포를 들었던 많은 사람들, 특히 최고의 학자라고 자처했던 율법학자들이나 종교 지도자들, 또는 유대의 권력자들은 예수님의 복음 선포를 들을 자세가 되어 있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한낮 시골 목수의 아들로 취급하며 자기보다 못한 사람으로 낙인을 찍거나, 자신들의 권위에 도전하는 사회 혼란자로 규정했기에 예수님의 어떤 좋은 가르침도 그들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실제 그들은 예수님의 복음 선포를 알아듣지 못해서라기보다는 근본적으로 그 가르침이 자신들에게 무례하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이때까지 자신들이 하느님 때문에 누리고 있던 종교적이며 정치적인 권력을 부인하는 예수님을 용납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예수님의 복음 선포를 받아들인다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기득권을 내어 놓아야 했습니다.그들은 자신들이 설정한 하느님의 상을 바탕으로 불의한 구조를 만들고, 그 구조를 이용하여 이익을 챙겨왔는데, 그것을 근본부터 바꾸라는 예수님의 복음 선포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들이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을 듣고도 못 들은 척, 예수님의 기적 사실을 보고도 못 본 척 하였던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그런 예수님의 말씀을 트집 잡아 예수님을 죽일 음모를 꾸미고, 마침내는 십자가형에 처했던 것입니다.
그들과 달리 유식하지도 부유하지도 못한 제자들은 예수님의 복음 선포를 듣고,그 가르침이 자신들이 생활했던 모든 것을 버릴 정도로 그들에게는 참 진리였기에 그 자리에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그런 제자들을 보며 예수님께서는 “너희의 눈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 귀는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 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예수님의 복음 선포를 믿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지금 행복합니까?
행복이란 말을 생각하니 일전에 돌아가신 요한 바오로2세 교황님이 떠오릅니다. 돌아가시기 직전 임종을 지켜주던 주위 분들에게 “나는 행복합니다. 그대들도 행복하시오” 일생을 오로지 주님의 복음 선포를 온 세상에 전해주려고 노력하면서 마지막에 돌아가실 때에 하신 행복하다라는 그 한 마디는 바로 우리들이 가는 길이 올바르다는 현대의 표징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의 몫이 남아 있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선택되어 좋은 눈과 귀를 가진 우리들은 눈과 귀를 잘 사용해야 합니다. 가진 것만으로 다 이루어졌다고 볼 수 없습니다. 눈과 귀를 통해 보고 들은 예수님의 참 진리를 자신의 마음 안에 담고 깨우칠려고 노력할 때, 그에게 마침내 깨우침이 일어나고 교황님처럼 행복합니다라는 말이 쉽게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행복합니다라는 말이 모든 사람의 입에서 흘러나온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좋은 세상일까 기대해봅니다.
감사합니다.

  

- 부산교구 한 건 도미니코  신부님 복음 강론 글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