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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복음 묵상(루카9,51-56) -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기념일

까치산 2025. 9. 30. 10:27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기념일

즈카8,20-23 
루카9,51-56

"예루살렘을 향한 여행경로"

  
오늘 복음으로서 예수님의 전교활동은 일대 전환기를 맞게된다.
루카는 예수께서 하늘에 오르실 날이 가까워진 것을 아시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기로 결심한 시점을 근거로 갈릴래아 활동기(루카 4,14-9,50)의 막을 내리고, 예루살렘 상경기(루카 9,51-19,28)의 새로운 장을 열고 있다. 예루살렘을 향한 새로운 여정이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에 대한 두 번째 예고(9,44) 직후에 시작된 것은 사람의 아들은 다른 어떤 곳이 아닌 예루살렘에서 필히 죽어야 하며, 이곳에서 필히 부활해야 함을 암시한 것이다. 이는 예루살렘에 이르기 전까지 펼쳐질 예수님의 새로운 선교여행을 예고하는 것으로서, 분량으로 볼 때 루카복음의 1/3을 차지한다.

여행의 목적지는 분명 예루살렘이지만 이 여행이 얼마나 걸릴지는 아무도 정확히 알 수 없다
우리가 지도를 놓고 예루살렘을 향한 여행경로를 설정한다면, 당연히 갈릴래아 호수에서부터 가장 가까운 직선경로, 즉 갈릴래아->티베리아->사마리아->세겜(그리짐산 근처)->베델->라마->예루살렘의 경로를 택할 것이다. 예수님의 일행도 같은 노선을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선발대를 먼저 사마리아 지방으로 보내어 묵을 곳을 찾게 하신다.(52절)

그런데 의외로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의 일행을 노골적으로 거부한다.(53절) 사마리아 지방이 어떤 곳인가?
솔로몬의 통치 말기, 기원전 933년경에 히브리의 단일민족국가는 북쪽의 이스라엘왕국(수도: 사마리아)과 남쪽의 유다왕국(수도: 예루살렘)으로 쪼개진다.(1열왕 12,19)  이스라엘왕국은 기원전 721년 앗시리아의 침입으로 패망한 후 시간이 흐름에 따라 히브리족의 정통성을 상실하게 된다.이는 곧 야훼신앙의 변질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혼혈족이 되어버린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리짐산에 새 성전을 세워 혼합종교를 신봉하였다.  따라서 정통성을 고수하는 유다인과 변질된 사마리아인 사이가 좋을 리 없다. 서로 냉대하고 적대시하였던 것이다. 그들이 예수의 일행을 거부한 처사는 당연한 귀결이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고 했던가?
예수님의 두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그들의 냉대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을 보인다. 하늘에 청을 드려 불을 내리게 하여 저들을 불살라 버리자는 것이다.(54절) 이 대목은 구약의 엘리야가 북쪽 이스라엘이 이방인의 신을 섬긴 것 때문에 오십인 대장과 오십인 부대를 두 번씩이나 불살라 죽인 사건을 떠올려 준다.(2열왕 1,10-12) 제베대오의 아들들인 야고보와 요한 형제는 그들에게 붙여진 "보아네르게스"(천둥, 또는 폭풍의 아들들)라는 별명답게 다혈질적이고 강한 질투심과 명예욕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이 두 사람은 자신들의 성격답게 이왕 가는 길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결판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그들의 머릿속에는 이미 두 차례의 수난과 죽음예고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성공적인 상경과 예루살렘에서의 영광과 왕관이 번득이고 있었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돌아서서 이 두 제자의 야박한 마음과 잘못된 생각을 꾸짖으신다.(55절) 이 꾸짖음은 예루살렘을 향한 여행경로의 수정을 의미하는 것이다.(56절)
실제로 예수께서는 사마리아 지방을 바로 관통하지 않고, 당시 데카폴리스 지방과 사마리아 일부 지방, 베레아 지방을 두루 지나(17,11) 예리고를 거쳐(19,1)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게 될 것이다.  
예수님께 중요한 것은 어떤 경로를 택하느냐는 것이 아니라 어떤 방법으로 길을 가느냐는 것이다.

 

- 부산교구 박 상대 마르코 신부님 복음 강론 글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