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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 너를 보니 / 법정 스님

까치산 2025. 10. 25. 10:31

 

 

♣단풍 너를 보니♣


                            - 법정 스님 -


늙기가 얼마나 싫었으면
가슴을 태우다 태우다
이렇게도 붉게 멍이 들었는가


한창 푸르를 때는 
늘 시퍼럴 줄 알았는데
가을바람 소슬 하니 
할 수 없이 너도 옷을 갈아 입는구나


붉은 옷 속 가슴에는 
아직 푸른 마음이 
미련으로 머물고 있겠지

 
나도 너처럼 
늘 청춘일 줄알았는데 
나도 몰래 나를 데려간 세월이 
야속하다 여겨지네


세월 따라 가다보니 
육신은 야위어 갔어도 아직도 내 가슴은 
이 팔 청춘 붉은 단심(丹心)인데 
몸과 마음이 따로 노니 
주책이라 할지도 몰라


그래도
너나 나나 잘 익은
지금이 제일 멋지지 아니한가


이왕 
울긋 불긋 색 동 옷을 갈아입었으니
온 산을 무대 삼아 
실컷 춤이라도 추려 무나


신나게 추다보면 
흰 바위 푸른 솔도 손뼉 치며 끼어들겠지

기왕에 벌린 춤 
미련 없이 너를 불사르고
온 천지를 붉게 활활 불태워라
삭풍이 부는 겨울이 오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