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중 제4주간 수요일
2사무엘기 24,2.9-17
마르코 6,1-6
오늘 복음은 고향을 찾아가신 예수께서 안식일이 되자 회당에 들어가셔서 가르치셨다는 내용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예수의 가르침을 들은 고향의 많은 사람들이 놀라며 "저 사람은 어떤 지혜를 받았기에 저런 기적들을 행하는 것일까? 그런 모든 것이 어디서 생겨났을까?"하며 궁금해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강론을 통하여 예수의 지혜가 어디서 왔는지를 설명해 드림으로써 그 궁금증을 풀어드릴까 합니다.
예수님 고향 사람들은 예수가 누구인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로 그의 아버지는 목수이며 그의 형제들은 야고보, 요한, 유다, 시몬이고 그의 누이들은 다 결혼을 하여 고향에 함께 살고 있으며, 예수 자신도 아버지 직업을 이어받아 목수 노릇을 하며 살았던 것을 예수의 고향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습니다. 삼십년 간을 고향 나자렛에서 동네 사람들과 함께 살았기에 조그마한 마을 나자렛에서는 어릴 때의 예수와 청년 때의 예수를 다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의 기억을 종합하면 예수는 크게 촉망받은 젊은이가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마을 사람들 모두가 예수를 장래성이 있는 젊은이로 보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저 성실하고 착한 보통의 젊은이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젊은이가 고향을 떠난 지 1년 후에 놀라운 가르침을 주는 사람으로 탈바꿈하여 고향에 등장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을의 회당에서 지혜로운 가르침을 주었기에 마을 사람들은 놀라며 예수의 지혜와 예수의 기적을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또 예수의 가르침을 믿으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예수의 지혜와 기적의 능력에 대한 출처에 궁금증을 가지게 되었기에 저 사람의 모든 것이 어디서 생겨났을까? 하고 묻게된 것입니다.
몇 가지 대답을 생각해보면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이시기에 하느님의 지혜를 태어날 때부터 부여받았다고 우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 대답도 틀린 대답은 아니지만 따라오는 우리의 생각은 예수는 크게 위대한 인물이지만 우리를 감동시키지는 못한다는 점입니다.
태어날 때부터의 하느님 아들은 당연히 하느님의 아들로 처신하여야 하고, 태어날 때부터 사람의 아들인 우리 인간들은 인간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라고 생각되어지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점은 고향 나자렛에서 평범하고 착한 젊은이로 살아가고 있는 예수께 세례 때처럼 성령의 비둘기 모양으로 찾아와 예수께 하느님의 지혜를 부여하였다는 것입니다.
마치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당시 겁에 질려서 뿔뿔이 도망쳐 갔던 예수의 제자들이 부활하여 발현하신 예수를 체함하고는 용감한 복음의 선포자로 갑자기 둔갑한 것처럼 예수님도 고향을 떠나서 일년 동안 어떤 중대한 사건을 체험하고서 출현하여 하느님의 지혜를 갖추게 되었다는 생각입니다. 이런 생각 역시 일리는 있지만 결국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은 하느님의 길을 가야하고 선택되지 못한 우리들은 우리 인간의 길을 걸으면 된다라는 결론으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그러면 세 번째로 예수의 그 지혜는 어떤 방법으로 하느님께로부터 왔을까하고 생각해봅니다.
예수의 그 지혜는 예수의 고뇌와 갈등, 번민과 회의, 좌절과 희망, 그리고 믿음과 깨달음의 결과가 아닐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예수는 쉬운 방법으로 하느님의 지혜를 깨달은 것이 아닙니다. 태어날 때부터 하느님의 아들로 세상에 오셨기에 그 모든 지혜를 하느님께로부터 선천적으로 타고났다는 해석이나, 우연한 기회에 돌발적인 사건을 통하여 하느님의 지혜를 깨닫는 다면 그것은 너무나 쉬운 방법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그런 방법으로 하느님의 지혜를 깨달은 것이 아닙니다.
죄 외에는 모든 점에 있어서 우리와 똑같은 예수께서는 우리 인간들이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깨닫는 방법과 비슷한 방법으로 하느님의 지혜를 깨달으셨습니다. 고뇌와 번민, 기도와 묵상의 방법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래서 성서는 자주 예수께서 산으로 기도하러 가셨다고 전해주고 있습니다.
기도와 묵상, 그리고 회의와 믿음의 방법으로 하는님은 예수께 하느님의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예수의 그 방법을 예수만큼 노력하여 기울인다면 하느님의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한 젊은이가 행한 것을 우리는 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신분의 차이도 아니고 선택의 차이도 아니고 바로 노력의 차이일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의 지혜와 기적을 잘 믿지 않으려는 예수님 고향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또 예수의 지혜가 어디서 왔을까 궁금해하는 그들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아보았습니다
하느님께서 지켜 주시고 도와 주시며 인간이 최선을 다하여 노력하는 방법으로 하느님의 지혜를 깨달을 수 있지, 그저 우연히 또 자신의 노력과는 관계없이 태어나면서 선천성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예수가 가진 지혜에 우리도 참여하기 위해서는 예수가 사용한 그 방법을 우리도 사용함으로써 가능하다는 말씀을 드리면서 강론을 맺을까 합니다.
- 부산교구 김 상호 신부님 복음 강론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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