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글/영상시

매화 앞에서 / 이 해인 수녀

까치산 2025. 4. 7. 10:36

 

 

♣매화 앞에서♣ 

                          - 이 해인 수녀 -

보이지 않게
더욱 깊은 땅 속 어둠

뿌리에서
줄기와 가지
꽃잎에 이르기까지
먼 길을 걸어 온
어여쁜 봄이
마침내 여기 앉아 있네

뼛속 깊이 춥다고 신음하며
죽어가는 이가
마지막으로 보고 싶어하던
희디흰 봄햇살도
꽃잎 속에 잡혀 있네

해마다
첫사랑의 애틋함으로
제일 먼저 매화 끝에
피어나는 나의 봄

눈 속에 묻어두었던
이별의 슬픔도
문득 새가 되어 날아오네
꽃나무 앞에 서면
갈 곳 없는 바람도
따스하여라

“살아갈수록 겨울은 길고
봄이 짧더라도 열심히 살 거란다
그래, 알고 있어
편하게만 살순 없지”
매화도 내게 그렇게 말했단다.

눈이 맑은 소꿉동무에게
오늘은 향기 나는 편지를 쓸까

매화는 기어이
보드라운 꽃술처럼 숨겨두려던
눈물 한 방울 내 가슴에 떨어뜨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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