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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복음 묵상(요한 13,1-15) - 주님 만찬 성목요일

까치산 2025. 4. 17. 10:28

 

주님 만찬 성목요일

탈출기 12,1-8.11-14    
1코린토 11,23-26   
요한 13,1-15

 "사랑으로 완성하는 나눔과 섬김"

 
오늘은 주님 만찬 성목요일입니다. 

우리는 일 년 중 가장 중요한 시기에 들어와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공생활 3년 만에 모든 것을 마무리해야 합니다. 사명을 맡기기에 아직 제자들은 못 미더운 데다가 하나는 배반까지 계획하는 걸 알면서도 아버지의 뜻이니 피할 수는 없습니다.
무엇으로 당신의 뜻을 제자들에게 전해줄지 고민하신 주님은 지금까지 그래온 것처럼 사랑과 겸손의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식사 도중 제자들 앞에서 발을 씻겨주는 종의 모습을 취하십니다. 말로만 혹은 하는 척만 해선 아무도 따라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무릎을 꿇으셨습니다. 

스승이 어떻게 제자에게 허리를 숙이고 무릎을 굽힐 수 있을까요? 그것은 단순히 형식적인 모습이 아닙니다. 진심에서 우러나온 섬김의 자세였습니다. 스승이 아니라 종으로서 그들을 사랑하고 섬기신다는 것입니다.그런 스승의 모습은 충격적이었을 것입니다. 첫 번째 수난예고 때 주님을 나무랐던 베드로는이번에도 스승을 말립니다. ‘당신은 영광 받으실 분인데 그런 모습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두 번이나 거절합니다. 하지만 그 영광이 어떻게 드러나는 지는 나중에야 깨닫게 됩니다.

서로 높은 자리를 차지하길 기대하는 제자들이었습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낮은 자세로 섬길 것을 요구하십니다. 주님의 수난을 깨닫지 못하는 그들에겐 ‘소 귀에 경 읽기’인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아버지의 뜻이요 영광에 이르는 길입니다.요즘에 서로의 발을 씻어주는 건 그때만큼 거북스럽진 않습니다. 드러나는 계급의 차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 생각만 해도 화가 치미는 사람이 앞에 있다면 그에게도 웃으면서 정성껏 발을 씻어줄 수 있을까요? 눈도 마주치기 싫겠지요. 정말 어렵겠지만 그것이 예수님의 요구요 우리의 목표입니다.

그렇게 겸손을 실천하신 주님은 또 하나, 제자들에게 나눔의 모범을 보여주십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겐 뭐든지 주고 싶어집니다. 조건이 필요 없습니다. 사랑한다면서 이런저런 조건을 단다면 그건 손해 보지 않으려는 장사나 마찬가지지요. 주님은 변화를 강요하지 않으시고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셨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것은 음식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당신의 살과 피를 사랑스런 우리에게 음식으로 주십니다. 살과 피는 곧 생명을 뜻합니다. 즉, 당신의 전부를 주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렇게 성체성사를 세우심으로써 성체를 받아 모시는 우리 모두가 하나 되게 하셨습니다. 그것만큼 스승과 제자를, 우리 서로를 하나로 묶어주는 것도 없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성찬례를 계속해서 거행하라고 합니다.

사람은 음식에 따라 변합니다.
흙에서 온 사람은 흙에서 난 음식에 지대한 영향을 받습니다. 음식에 따라 사람이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합니다. 우리 몸을 생각해서 음식을 정성껏 고르듯 영원한 생명을 위해 성체를 모시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의 몸을 모실 때마다 우리는 생명의 기운을 얻고, 참 생명에 더욱 가까워지게 됩니다. 진정으로 주님과 하나 되는 날까지 이 성찬의 신비에 끊임없이 참여하여 깊은 사랑의 나눔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  안동교구 손성문 사도 요한 신부님 묵상 글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