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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복음 묵상(요한 20,19-31) - 부활 제2주일(하느님의 자비 주일)

까치산 2025. 4. 27. 10:16

 


부활 제2주일(하느님의 자비 주일)

사도행전 5,12-16   
요한 묵시록 1,9-11ㄴ.12-13.17-19  
요한 20,19-31

 

"하느님의 자비로우심"

‘하느님은 못된 사람에게 즉시즉시 벌주시는 분이셨으면! 웬만한 뉘우침으로는 절대 용서하지 않는 분이셨으면! …….’
누군가로부터 속상한 일을 경험할 때 드는 생각입니다. 그러다가도 어느 날은 다급히 기도합니다. “하느님, 도와주십시오. 소중한 이가 아픕니다.”, “제가 말 못할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덮어주십시오.” 남에게는 혹독하신 하느님이 되어달라고 하고, 나에게는 한없이 자비로우신 하느님이 되어달라고 비는 내 이중적인 모습 앞에 어이없는 웃음이 나올 때가 있습니다. 나에게 자비로우신 하느님은 다른 누군가에게도 자비로우신 하느님이신데 그렇게 바라니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먼저 이르신 말씀 한 대목이 있습니다.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마태 5,7). 이는 남에게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하느님의 자비를 입을 것이고, 그분의 자비를 입고자 하는 사람은 남에게 자비를 베풀어야한다는 말씀입니다.

자비는 세 가지로, 즉 행동으로, 말로, 기도로 베풀어집니다.
행동으로서의 자비는, 불쌍한 처지의 사람에게 지갑을 열어주고 시간을 내어주고 재능 등을 나눠주는 것입니다.
말로서의 자비는, 이로운 말을 하고 깎아내리는 말이나 험담 등을 참아주는 것입니다.
기도로서의 자비는, 말 그대로 기도해 주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중에서 어느 하나 수월한 것이 없습니다. 맘 아프게 하는 사람을 위해서도 그리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비로운 마음은 하느님에게서 시작되며, 하느님을 기억할 때 시련 속에서도 꺾이지 않고 계속됩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이 토마스를 찾아오시어, 그 사도가 바라는 대로 해주십니다. 당신의 상처를 만져보게 하시어 당신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난 바로 ‘그 주님, 그 하느님’임을 믿고 고백하도록 이끄십니다.

예수님의 이 모습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자비를 봅니다.
특히 토마스가 예수님과 동료들에게 어떻게 했는지를 생각하면 더 그렇습니다. 이 사도는 예수님과 함께 죽자고 동료들을 부추겼지만 십자가 앞에서는 어느새 도망쳤습니다. 그로 인한 죄책감이 컸던 것인지 사도들이 모인 자리에 종종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혼자만 보지 못했습니다. 또 동료들이 주님 부활 소식을 전해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 토마스였습니다.

토마스의 행동이 우리에게는 많이 못마땅해 보일 수 있는데, 예수님께는 그렇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찾아오시어 너그럽게 대해주시고 그의 부족한 믿음을 채워주셨습니다. 이렇게 토마스는 주님의 자비를 입고 다른 사도들처럼 주님께 신앙을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믿음이나 희망이나 사랑에서 부족함이 많지만 그분의 자비를 입고 오늘을 삽니다. 그러기에 마음 한편에 남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도 챙겨봅니다.

 
- 청주교구 이 동식 발다살  신부님 복음 묵상 글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