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사랑과평화

오늘의 복음 묵상(마태 11,28-30)

까치산 2025. 7. 17. 10:39

 

 

 

연중 제15주간 목요일  

탈출3,13-20
마태 11,28-30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예수님께서 살던 당시의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율법은 무거운 짐이 되고 있었습니다.
근본정신인 사랑과 자비가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은 율법은 힘겨운 짐이었습니다. 그래서 마태 23,4를 보면, 예수님은 율법학자와 바리세이들에 대하여 “그들은 무거운 짐을 꾸려 남의 어깨에 메워 주고, 자기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 하지 않는다.” 고 책망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모세의 율법이나 아론의 제사법이 당시에 그만한 이유와 그 의의가 따로 있었겠지만 평범한 서민들에게는 크나큰 짐이 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태에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무거운 짐 진자는 다 내게로 오라!” 하시며, 그 모든 무거운 짐을 당신이 우리에게서 치워주시는 것입니다.

얼마나 감미로운 말입니까! 예수님과 동시대를 살아가던 사람들 뿐만이 아니라 오늘날 같이 점점 힘들어져 가는 세상살이 속에서
오늘의 이 말씀은 우리들에게도 희망을 안겨줍니다.

 우리를 짓누르는 무거운 삶의 무게들을 당신께서 함께 나누어지고 편하게 해 줄테니 당신께 와서 머물고 함께 하자는 초대이지 않습니까?  
당신과 함께 하면 그 무거운 짐, 우리를 괴롭히는 갈등과 힘든 생활도 가벼워진다는 초대이지 않습니까? 바리사이와 율사들이 억지로 지워주던 죄의 무게를 덜어주듯이 우리들의 죄의 무게도, 삶의 무게도 덜어 주신다는 말씀이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과연 그렇습니까?  
하느님과 함께 하면 현실의 이 어려움들이 씻은 듯이 사라지고 평화로운 날들만 계속됩니까?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우리가 성당에 가서 기도하거나 수도자나 성직자와 면담을 하면 다 해결이 됩니까?

기도를 해도 응답이 바로바로 오던가요?
혹시 참고 기도하자에서부터 하느님의 뜻을 기다려보자는 답까지는 나오되 현실적인 대답은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차라리 용하다는 점쟁이를 찾아가서 복채를 좀 내어놓으면 현실적인 예와 아니오가 나오기는 합니다. 때로는 부적까지도 나옵니다. 물론 그런 대답과 부적이 마음의 평안을 주기는 합니다만 그것이 마지막까지 옳은 대답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용하다는 점쟁이, 철학관의 점괘들 또한 우리의 현실을 바꾸어 주지 않습니다.
그저 잠시간의 안정을 줄뿐입니다. 그래서일까요? 당신의 멍에는 편하고 당신의 짐은 가볍다는 그 말씀들이 지금 우리에게는 어쩌면 그냥 이상에 불과 한지도 모르겠습니다. 또는 하나의 최면에 불과 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진정한 하느님 체험 없이는,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신 율법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지 않고서는, 무엇보다 하느님의 말씀을 몸으로 살아내기 전에는 오늘 이 말씀들이 하나의 이상이나 최면에 불과할 수 도 있습니다.  용하다는 점쟁이 집에서 나오는 말들보다 못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멍에를 메고 당신에게 배우라고 권고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실상 스승 그리스도 예수님은 우리 모든 이의 죄의 짐을 한 몸에 지니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구원을 마련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스승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당신이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듯이 우리 또한 당신과 당신을 닮은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십자가를 지라는 것입니다. 그 모습으로 살아낼 수 있을 때 진정한 예수님의 멍에가 무엇인지를 알고, 느끼고, 배우고, 살아낼 수 있습니다. 그때서야 비로소 그리스도 예수의 편한 멍에와 가벼운 짐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여, 우리는 어디로 많이 기울어지고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해보아야겠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때에, 삶의 무게에 짓눌려 허덕일 때, 그 힘든 상황을 이겨내기 위하여 하느님께 매달리고 있는지 아니면 다른 그 무엇들에 기대고 매달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다른 그 모든 것들 위에 하느님을 두고 하느님께 의지한다면 그 어떠한 일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을 체득하고, 하느님을 따라 산다면 말입니다.

하느님을 따라 산다는 것은 그저 손만 비비고 하늘만 쳐다보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 현실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이겨내라는 것입니다. 넘지 못할 산은 없다 했습니다. 하물며 마지막까지 함께 해 주시는 그분이 계신데 이겨내지 못할 십자가가 어디 있겠습니까?
스승 그리스도 예수의 멍에는 편하고 짐은 가볍습니다. 아멘.

 

부산교구 강 호성 바오로 신부님 복음 묵상 글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