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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복음 묵상(마태오 12,1-8)

까치산 2025. 7. 18. 10:07

 

 

연중 제15주간 금요일

이사야 38,1-6.21-22.7-8
마태오 12,1-8


"법을 선행하는 법제정 정신"

 
그리스도교의 모태가 되는 유대교의 핵심은 야훼 하느님께 대한 유일신관이다.
이는 유대인들이 다신론적인 근동 아시아 세계 안에서 오랜 시간과 노력을 거쳐 얻어낸 그들 신앙의 핵심이다.신앙은 무릇 내용만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행위를 수반해야 하듯이 유일신 하느님에 대한 유대교 신앙의 내용은 그분이 내려주신 율법(토라, 모세오경)이며, 신앙의 행위는 이 율법을 준수하는 것이다.

따라서 율법을 실제로 지킨다는 것이 곧 그들 신앙의 전부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하느님과 동일시되는 율법을 준수하는 데 있어서 이를 어떻게 관리하고 해석하느냐는 것이다. 결국 유대교 안으로 율법의 관리와 해석을 담당하는 그룹이 등장하게 되는데 이들이 바로 랍비(선생)들인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사람들이다.

 이 선생들이 율법을 관리하고 해석하면서 ‘시행세칙’을 만들었으니 이것이 바로 ≪탈무드(Talmud)≫이다.
탈무드는 유대교 율법의 시행세칙과도 같은 것으로서 율법의 해설, 구전(口傳, 미슈나), 전통적 관습, 축제, 민간전승 등을 총망라한 책으로서 유대인의 정신적, 문화적인 유산으로 평가된다. 탈무드는 약 1만 2천 권의 엄청난 규모로서 유대인들 지혜의 총집합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지금도 이 책은 계속 기록되고 있다.

어제 복음에서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은 다 나에게로 오너라. 내가 편히 쉬게 하리라.”고 하신 예수께서 오늘은 율법과 그 기본적인 정신에 관하여 다시 한번 들려주신다.
마태오복음사가는 원전이 되는 마르코의 같은 대목(2,23-28)을 참조하면서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은 아니다”(27절) 는 말을 삭제하였다. 그 이유는 자칫 이 부분이 안식일 법을 폐기하려는 의도로 착각될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마태오는 이미 예수께서 율법이나 예언서의 말씀을 없애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마태 5,17)는 자신의 독자적인 편집을 통하여 율법의 완성을 강조한 바 있다.

오늘 복음에서 마태오는 ‘안식일’과 ‘제자들이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밀 이삭을 잘라먹는 행위’를 놓고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예수님의 대립상황을 묘사하고 있다.(1-2절)
율법은 ‘이웃집 밭에 서 있는 곡식 이삭을 손으로 잘라먹는 것은 괜찮지만 곡식에 낫을 대면 안 된다.’(신명 23,26)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제자들의 행위는 범법행위가 아니지만,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이를 안식일법과 관련짓고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다윗과 그 일행의 행동(1사무 21,1-10)과 아론과 그의 아들들, 즉 사제들에 대한 안식일의 예외규정(레위 24,9)을 들어그들의 생각을 흩어버리신다.(3-5절)

오늘 복음의 요점은 사람의 아들이 바로 법의 주인이시라는 것이다.(8절)
여기서 사람의 아들은 예수님을 지칭한다. 그분은 메시아의 상징인 다윗이나 대사제인 아론보다 크신 분이시며, 유대교 신앙의 요람인 예루살렘 성전보다 크신 분이시며, 율법의 주인이시다.

어떤 법이든 그 법이 제정되기까지의 정신이 있다.
이 말은 법을 제정하는 정신이 제정된 법을 선행한다는 말과 같다. 오늘 복음에서 “내가 바라는 것은 나에게 동물을 잡아 바치는 제사가 아니라 이웃에게 베푸는 자선이다.”(호세 6,6; 마태 9,13)는 구약의 인용이 바로 율법의 정신을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제사는 곧 규정된 율법이요 자선은 이 율법을 제정한 정신임을 알 수 있다. 결국 좋은 양심과 도덕이 법을 앞질러 간다는 말씀이다.

 
- 부산교구 박 상대 마르코 신부님 복음 묵상 글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