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중 제14주간 수요일
창세기 41,55-57; 42,5-7ㄴ.17-24ㄱ
마태오 10,1-7
"모이는 자, 모으는 자"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게 하셨다."
"예수님께서 이 열두 사람을 보내시며 이렇게 분부하셨다.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오늘 복음은 제자들중에서 열둘을 사도로 부르시고 파견하시는 내용입니다.
그러니까 사도들의 <부르심과 파견>의 얘기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진지하게 성찰한다면 누구나 이것이 사도들만의 얘기가 아니라는 것쯤은 성찰할 것이고, 저도 여러분도 사도로 부르심받고 파견되는 존재임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도란 어떤 존재입니까?
첫째로 부르심에 주님을 중심으로 모인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뭐 대단하다고 하느냐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이것도 잘 성찰하면 대단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란 주님께서 부르지도 않았는데도 제자들이 마음대로 또는 잇속으로 모여든 것이 아니라
부르심에 응답한 존재이며 그뿐 아니라 주님의 부르심을 걷어차지도 않은 존재이기도 합니다.
둘째로 모인 존재란 혼자가 아니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한 사람만 부르시고 그래서 혼자 갔으면 모였다고 하지 않지요. 우리 성소의 아주 중요한 측면입니다. 우리의 성소는 개별 성소이기도 하지만 모임의 성소요 그래서 교회 성소입니다. 수도자로 치면 우리는 독수 수도자가 아니라 공동생활 수도자이고, 주님 앞에 공동으로 나아가고 주님을 중심으로 모인 공동체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사도들이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대표하는 것이듯 우리의 숫자가 셋이나 넷밖에 안 될지라도 우리가 주님을 중심으로 모이면 우리는 교회를 대표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모이는 존재일 뿐 아니라 모으는 존재여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특별히 부르심받는 이유도, 파견되는 이유도 바로 그리고 다 이것 때문입니다.나만 주님 곁에 있고, 나만 주님의 가르침을 받으며, 나만 주님의 치유를 받고,그래서 나만 구원을 받는 그런 이기주의적인 존재가 아니라면 우리는 모으기 위해 파견되어야 합니다.
어제 복음의 끝에 목자 없는 양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음을 한탄하시며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으니 추수 밭 주인에게 일꾼을 보내 달라고 청하라고 하신 주님의 뜻에 따라 사방에 흩어진 주님의 양 떼를 모으기 위해 파견되어야 합니다.
물론 이것을 자랑스럽게나 영광스럽게 생각하지 않고 부담스럽게만 생각할 사람은 빠질 것입니다. 며칠 전 이 영광스러운 일에 초대를 하였더니 나이 핑계를 대며 빼는 것이었습니다. 늙어서도 늙은 것 만큼 할 수 있는 일이 있는데, 늙은이이면 늙은 사람을 모아도 되는데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부르심을 걷어차니 불쌍해보였습니다. 저도 그렇게 되어가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는 오늘입니다.
- 작은형제회 김 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 복음 묵상 글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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