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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복음 묵상(마태오 16,24-28)

까치산 2024. 8. 9. 11:21

 

 

연중 제18주간 금요일

나훔 2,1.3; 3,1-3.6-7         
마태오 16,24-28



 ‘나훔’ 예언자의 이름의 의미는 ‘위로받은 이’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의 역할은 이름의 뜻과 달리 ‘위로를 주는 이’였습니다.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아시리아가 맹위를 떨치던 어두운 시대에, 강자의 희생자가 되어 고통을 겪던 유다 백성에게 주님의 위로와 희망을 전하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볼 수 있듯 아시리아의 패망, 유다를 향한 위로, 그리고 아시리아의 수도 니네베의 멸망에 대한 묘사는 하느님을 찬미하라고 권고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의로운 이들에게는 구원을 베푸시지만, 불경한 이들에게는 벌을 내리시는 “보복하시는 분”(나훔 1,2)이심을 강조하면서, 인류의 미래가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느님의 손안에 절대적으로 달려 있다는 것을 밝힙니다.

그렇습니다. 

화답송에 나오는 모세의 노래처럼 하느님께서는 희생당하는 당신 백성을 대신하여 “적대자들에게 복수하고, 원수들에게 되갚으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복음 환호송에 나오는 예수님의 행복 선언에서 볼 수 있듯 ‘의로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박해를 받는 사람들에게 하늘 나라를 주시는’(마태 5,10 참조) 위로의 하느님이시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 됨의 길을 제시하십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당신에 대한 배척, 수난 그리고 죽음을 앞두시고 적대자들에 대한 보복은 하느님께 맡기시고, 기꺼이 십자가의 길을 가시려는 예수님께서는,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는 이의 본보기가 되십니다. 따라서 불경한 자들에게는 보복을, 의로운 이들에게는 위로를 주시는 하느님의 모습은,
궁극적으로 예수님께서 달리신 십자가를 통하여 온전히 드러납니다.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예수님을 따라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주님의 도구가 되어야 할 선택이 우리에게 주어진 셈입니다.

 
- 서울대교구 박 기석 사도 요한 신부님 묵상 글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