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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복음 묵상(마태오 7,1-5)

까치산 2025. 6. 23. 10:07

 

 

연중 제12주간 월요일

창세기 12,1-9   
마태오 7,1-5

"제 탓이요, 제 탓이요, 저의 큰 탓이옵니다"

 
‘말 한 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있지요.
우리는 말 한 마디로 천냥 빚을 갚기도 하지만 또 반대로 말 한 마디로 원수 관계를 만들기도 합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갈등과 싸움이 말에서 시작이 되는 것을 쉽게 볼 수가 있습니다. 어떠한 말을 하느냐에 따라서 싸움으로 치닫기도 하고 또 화해의 계기가 만들어지기도 하지요. 사람과의 관계 대부분이 언어로 시작되고 언어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서 위로가 되기도 하고 상처가 되기도 하며,한 마디의 말이 사람을 일으켜 세우기도 하고 쓰러뜨리기도 하지요.

지혜로운 말과 어리석은 말은 어떻게 다른 것일까요? 

간단합니다. 남을 감싸주고 칭찬하는 말들은 지혜로운 말이지요. 남을 비난하고 헐뜯는 말들은 어리석은 말입니다.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서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지요. 큰 전쟁이 일어날 뻔한 일을 막은 한 줄의 글을 소개합니다.

남미의 아르헨티나와 칠레는 양국의 우호를 다지기 위해 국경에 예수 그리스도의 동상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이 동상으로 인해 오히려 두 나라는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동상이 완성 단계에 이르렀을 때 칠레의 어떤 사람들이 ‘예수님 동상이 칠레에 등을 돌리고 계신다.’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동상 전면은 아르헨티나를 향했고 뒷면은 칠레 쪽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이 일은 칠레인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분노케 했습니다. 사람들의 감정은 점점 거칠어갔지요.양국간의 감정이 나쁜 방향으로 치닫고 있을 때 이를 명쾌하게 극복하는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그것은 칠레의 한 기자가 신문에 쓴 재치 있는 기사였습니다.

 ‘예수님의 얼굴이 아르헨티나를 향하여 서 계시는 이유는 아르헨티나가 칠레보다 더 예수님의 보살핌이 필요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 기사는 칠레인의 고조된 감정을 가라앉힐 만큼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한 사람의 긍정적이고 평화적인 글이 두 나라의 엄청난 비극을 막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그렇습니다. 따뜻하고 긍정적인 마음을 담은 지혜로운 말은 세상에 평화를 가져옵니다.불에 기름을 끼얹듯 성난 국민을 선동하는 모난 기사가 실렸다면 아마도 전쟁이 일어났을지도 모를 일이지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마태7,1) 여기서 판단한다는 것은 나쁘게 보고 생각하고 말하는 것을 말합니다. 나쁘게 보고 말하고 생각하면 그 사람 또한 그대로 다른 사람들로부터 나쁜 말과 행동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어리석은 사람이 ‘누워서 침 뱉는 사람’이지요.
누워서 침을 뱉으면 그 침이 어디로 떨어집니까? 바로 내 얼굴로 떨어지지요.남에 대해서 나쁘게 말하면 나에게는 더 고약한 말이 돌아오는 법입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지요.남을 판단하고 나쁘게 말하는 것은 참으로 지혜롭지 못한 태도입니다.특히 오늘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너희가 심판하는 그대로 너희도 심판받고,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받을 것이다.” (마태7,2)
그렇습니다. 내가 이러쿵저러쿵 이웃을 욕하고 저울질하면 하느님께서 나를 저울질하시기 전에 벌써 이 세상에서 그와 똑같이, 어쩌면 그 이상으로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바오로 사도 역시 말을 조심하고 지혜로운 말로써 공동체가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여러번 말씀하셨지요.“여러분의 입에서는 어떠한 나쁜 말도 나와서는 안 됩니다.필요할 때에 다른 이의 성장에 좋은 말을 하여, 그 말이 듣는 이들에게 은총을 가져다줄 수 있도록 하십시오.”(에페4,29)

오늘 예수님께서는 남을 판단하지 말고 먼저 자기 자신을 돌아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네 눈 속에는 들보가 있는데, 어떻게 형제에게 가만, 네 눈에서 티를 빼내 주겠다.‘하고 말할 수 있느냐”(마태7,3-4)오늘도 우리는 부정적이고 비판적이며 공격적인 말들과 사건들로 넘쳐나는 세상에 나가 살아야 합니다. 거기에 휩쓸리면 같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지요. 그 와중에서도 이웃을 살리고 희망을 주는 긍정적인 말들을 생각하고 행하는 것, 이것이 복음을 사는 방법입니다.

 

위로와 격려의 내 말 한 마디가 깨어지고 상처가 나서 보복하고 싶은 감정들을 누그러뜨리고 새로운 계기를 만드는 바탕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남을 판단하기에 앞서 먼저 자신을 돌아보고, 이웃에 대해서 함부로 말하기보다는 칭찬하고 격려하며 사랑의 언어만을 세상에 심는 복된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  서울대교구 이 기양 요셉  신부님 복음 묵상 글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