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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복음 묵상(마태오 18,19ㄴ-22) -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까치산 2025. 6. 25. 10:12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신명기 30,1-5   
에페소 4,29―5,2  
마태오 18,19ㄴ-22 

"트라우마 극복하기"

 
오늘은 남북으로 갈라진 우리 민족이 서로 화해하고 일치하기를 기도하는 날입니다.
어떤 이는 ‘북한’이라는 단어만 나오면 거부와 폐쇄적인 마음을 가집니다.그에게 있어 ‘북한’은 ‘트라우마’라 할 수있습니다. 그에게 북한은 사랑할 수 없는 대상이요,용서할 수 없는 대상입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예수 님의 사랑과 용서가 적용되지만,유일하게 북한에만 예수님의 복음도, 사랑도, 용서도 적용되지 않는 ‘트라우마’입니다.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이 트라우마를 극복할 순간이 오기를 간절히 기도해야 할 것 입니다.

남북이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기 위해서 우리 신앙인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요?
오늘 독서와 복음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신명 30,1-5) 내용은 이스라엘 백성이 미래에 유배갈 것임을 모세가 예고하는 부분입니 다. 유배는 하느님께 불충한 죄의 결과입니다. 하느님이 바라시는 대로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돌아오기 위해서는 마음으로 뉘우치고(신명 30,1) 하느님께 돌아와서 마음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신명 30,2ㄴ) 회개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어떤 문제에 대해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남의 탓’이라고 계속 주장하면 할수록 관계를 좁힐 수 없습니다. 먼저 ‘내 탓이요’라는 회개가 필요합니다.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새로운 백성이 된 하느님 백성에게 새 생활의 법칙을 말해주고 있습니다(에페 4,29-5,2).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에페 4,32).


우리는 북한을 얼마나 많이 용서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더는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오늘 복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오18,22).사실 완전한 용서란 한계나 제한도 없는 용서이고, 하느님 사랑의 무한한 신비는 바로 ‘용서’에 있습니다(가톨릭교회교리서 2845항 참조).

 회개나 용서는 나 자신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내가 받아들일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반세기를 넘어 지속되고 있는 갈등과 분열을 넘어설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마음을 모아, 하느님 아버지께 남북이 화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해봅시다. 아멘.

 

- 수원교구 백 윤현 신부님 복음 묵상 글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