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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복음 묵상(마태오 13,18-23) -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부모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 기념일

까치산 2024. 7. 26. 10:26

 

 

연중 제16주간 금요일 -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부모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 기념일

예레미야 3,14-17        
마태오 13,18-23

"비유말씀을 설명해 주시는 이유"

 
예수님을 직접 볼 수도 없을 뿐 아니라 하느님나라에 관한 현실감을 좀처럼 체감하기 어려웠던 마태오복음공동체나 현대의 우리들에게 있어서 예수님의 비유설교는 인간의 언어로 표현될 수 있는 하느님나라의 신비에 관한 마지막 도구(道具, instrument)요, 상징(象徵, symbol)라고 했다.


하느님나라의 신비는 곧 하느님 존재의 신비이기도 하다. 그러나 예수님 시대에 바로 그 자리에서 그분을 직접 보는 눈과 그분의 말씀을 직접 듣는 귀는 참으로 행복한 것이다.(16절)
이는 갈수록 어떤 신비스러운 것으로부터 이탈해가고, 심오한 것을 마치 미신으로 여기듯 하는 현대의 우리들이 참으로 부러워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느님나라의 신비에 관한 일곱 개의 비유 중에서 그 첫 번째인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이미 말씀해 주셨고, 비유로 말씀하시는 이유까지 밝혀주신 예수께서 오늘은 그 비유를 자세히 설명해 주신다.

사실은 비유설교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겠으나  설명해 주시는 이유를 곱씹어 보아야 한다.
우선 씨앗은 하늘나라의 복음(福音)이다. 그 씨앗을 뿌리는 사람은 복음선포자이다. 그 씨앗이 뿌려지는 곳은 네 곳으로 언급된 바 있다. 길바닥, 돌밭, 가시덤불, 좋은 땅은 복음의 씨앗이 뿌려지는 토양으로서 선포되는 복음말씀을 듣는 청중과 그 청중의 내적 조건을 의미한다.

① 길바닥에 떨어진 씨는 새의 밥이 된다고 했다.
길바닥이란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한 경우를 말하며, 이 때 그 씨앗을 먹어치우는 새는 악한 자, 즉 사탄을 의미한다. 결국 길바닥은 많은 사람들이 밟고 다니는 곳으로서 이는 청자의 마음 밭이 세속적인 지식이나 교훈, 과학이나 철학이념으로 다져져 있어 복음을 받아들여 싹을 피울 수 있는 어떤 마음의 바탕도 없는 상태를 뜻하는 것이다. 이런 고정관념들이 씨를 쪼아 먹는 새에 비유된 사탄인 셈이다. 사탄은 곧 인간 스스로의 마음에 살고 있는 교만이나 자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② 씨앗의 싹을 피울 수 있는 어느 정도의 토양만을 제공하는 돌밭은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조건이다. 강한 햇볕 속에서 피운 싹을 부지하기란 불가능한 조건인 것이다. 이런 돌밭에 씨가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기는 했지만 그 뿌리가 마음속에 내리지 않아 그 말씀 때문에 닥쳐오는 환난이나 박해를 견디지 못하고 말라죽는 경우이다. 복음말씀과 신앙 때문에 손해를 견디지 못하는 것도 같은 경우일 것이다.

③ 가시덤불에 씨가 떨어졌다는 것도 말씀을 듣고 깨닫기는 했지만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이 말씀을 억눌러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경우를 말한다.
복음말씀을 받아들이고 깨달았다고 하여 걱정과 유혹거리가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더 크고 심각하게 다가올지도 모른다. 이런 장애들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신앙의 성장을 도모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신앙인은 세상 안에 살면서 세상의 것을 향유하면서도 집착과 과욕을 제어하고 천상의 것에 대한 감각을 늘 유지하고 성장시켜나가야 하는 것이다.

④ 예수께서 바라시는 것은 좋은 토양에 복음의 씨앗이 뿌려지는 것이다.
좋은 토양은 복음말씀을 잘 듣고 깨닫는 사람의 마음상태를 의미한다. 그런데 씨앗이 길바닥에 떨어진 경우를 제외하고, 돌밭이나 가시덤불 속이나 좋은 땅에 떨어진 경우는 모두 말씀을 듣고 깨달은 경우를 의미한다. 깨달았다는 말은 씨앗이 발아(發芽)하여 싹이 피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문제는 그 뿌리가 열매를 맺을 수 있을 때까지 얼마나 견디어 내느냐는 것이다.
따라서 돌밭과 가시덤불 속의 씨앗은 뿌리는 내리지만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경우이다. 그러나 좋은 땅에 떨어진 씨 은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다.

복음의 씨앗이 좋은 땅에 뿌려진다고 해서 저절로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니다.
적당한 햇볕과 알맞은 수분이 토양과 더불어 훌륭한 가실(佳實)을 이루어낸다. 그렇다고 좋은 땅이 아닌 곳에 떨어진 씨앗이 결코 열매를 맺지 말라는 법은 없다. 물론 길바닥이나 돌밭이나 가시덤불 속에 떨어진 씨앗이 비유 속에서는 열매를 맺지 못했다. 그러나 비유의 설명 속에서는 얼마든지 열매를 맺을 수 있다. 들과 산을 돌아다니다 보면 암층의 절벽에서뿐만 아니라 길바닥, 돌밭, 가시덤불 속에서도 아름답게 피어있는 꽃이 있지 않는가.

이것이 오늘 예수께서 비유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해주시는 이유이다.
사람은 자신을 변화시켜 고정된 가치관과 사고방식을 바꿀 수 있고, 환난과 핍박과 박해의 온갖 어려움도 이겨낼 수가 있으며, 세속의 온갖 걱정과 유혹거리도 극복해 나갈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복음의 뜻을 따라 기도하고 묵상하며, 사랑하고 선행함으로써 영원한 생명의 열매를 맺기 위해 신앙에 항구하고 지구(持久)하는 것이다. 신앙의 지구력, 그것은 결실을 위한 하느님 성령의 능력이기도 하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열매를 맺는 일에는 깨달음을 행동으로 수행하는 자신의 부단한 노력이 있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부산교구 박 상대 마르코  신부님 묵상 글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