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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복음 묵상(요한 1,1-18) - 성탄 팔일 축제 제7일

까치산 2024. 12. 31. 10:17

 

 

 

성탄 팔일 축제 제7일

1요한 2,18-21   
요한 1,1-18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오늘은 ‘성탄 8부 내 7일’이며 올해의 마지막 날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마지막 날에 독서를 통해서는 ‘마지막 날’에 대한 말씀을, 복음을 통해서는 “한 처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요한 1,1)
“한 처음에”라는 이 단어는 창세기의 첫 단어이기도 합니다.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창세기 1,1)
“한 처음에”라고 번역된 히브리어(베레쉬트)는 ‘집’, ‘안에’(베트)라는 말과 ‘처음’, ‘시작’(레쉬트)이라는 말이 합쳐져서 ‘세상이 집 안에서 창조되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여기서, ‘집’(베트)이란 곧 ‘하느님의 집’, ‘하느님이 거한 처소인 성전’을 의미하고, ‘처음’(레쉬트)이란 곧 ‘첫 열매’, ‘하느님의 맏아들’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다시 해석해 보면, ‘맏아들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의 집인 세상이 창조되었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또한 ‘아들’(바르)이란 단어의 뜻은 ‘집의 사람’, ‘집에 거하는 사람’, 나아가서 ‘집에 거하며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온전한 자’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아들’은 ‘아버지가 거처하는 집’인 셈입니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너는 믿지 않느냐? ~ 내 안에 머무르시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일을 하시는 것이다.”(요한 14,10) 그러니 오늘 복음의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는 말씀은 우리를 당신의 집으로 삼아 우리 가운데 사신 것을 드러내줍니다.

그리하여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습니다(요한 1,12).
곧 우리를 ‘하느님의 집에 거하는 사람, 아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아들’이란 말의 또 다른 뜻은 ‘집을 다스리는 사람’, 곧 ‘아버지의 집을 경작하며 아버지의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히브리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집안을 맡은 아드님으로서 충실하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그분의 집안입니다.”(히브리서 3,6)
그러니 ‘아버지의 집을 경작하는 사람이 바로 아들’입니다.여기서 ‘경작하다’, ‘다스리다’는 말의 히브리어(아바드) 뜻은 성경에서 주로 ‘섬기다’는 뜻입니다.그리고 ‘섬긴다는 것’은 ‘집의 문을 보는 것’, 곧 ‘주인의 집에 문에서 섬기는 사람’으로 ‘종’의 모습을 말합니다.

탈출기에서는 ‘주인을 사랑하여 함께 살고자 하는 종’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주인은 그를 하느님께 데리고 가서 문짝이나 문설주에 다가 세우고, 그의 귀를 송곳으로 뚫는다. 그러면 그는 종신토록 그의 종이 된다.”(탈출기 21,6) 이처럼, ‘종’은 항상 주인의 집의 문에 서서 주인의 음성을 듣고 주인을 섬기는 사람임을 말해줍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도 종의 모습으로 오시어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필리피서 2,7-8).

그렇습니다. 

아버지의 집에 살고 있는 자녀인 우리는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진정으로 섬기는 삶이 있어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새롭게 시작하는 한 해에는 ‘섬김의 삶’을 살아가는 자녀가 되어야겠습니다. 아멘.

 
<오늘의 샘 기도>

주님!
한 해의 마지막 날을 보내면서,
제 발길이 당신을 향하여 있는지,
제 마음에는 당신의 평화가 들어와 있는지를 봅니다.

그렇습니다.
당신께서는 이미 제 안에 생명의 빛을 불어넣으셨으니
이제는 죽음의 어둠에 물들지 않게 하소서.
제가 당신 생명으로 새로워지고
세상에 당신의 생명을 드러내게 하소서.
온 세상이 생명의 빛으로 차오르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토 수도회  이 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묵상 글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