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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복음 묵상(루카 3,10-18) - 대림 제3주일(자선 주일)

까치산 2024. 12. 15. 10:46

 

 

대림 제3주일(자선 주일)

스바니야 3,14-18ㄱ  
필리피 4,4-7   
루카 3,10-18  :  저희는 또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늘의 전례는 모두가 기쁨에의 초대의 내용이다. 
이러한 기쁨을 주제로 하므로 기쁨의 주일, 장미 주일이라고 한다. 이러한 날 우리는 우리보다 어렵고 고통당하는 이웃을 생각하는 자선 주일이기도 하다. 우리는 지난 주일에 주님께서 우리 안에 오실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의 내적인 변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기쁨의 동기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시게 된”(요한 1,14) 강생의 신비에서
나오는 것이며, 하느님께서 항구히 우리 가운데 계시며 우리를 도와주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데 있다. 이 때문에 요한 세례자는 자기 뒤에 오시는 분에 대하여 준비시키고 있다.

복음에서 요한 세례자는 엄격한 권고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오심을 준비시키면서 자신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기쁨의 동기를 부여하고 있다. 

오시는 분은 요한 세례자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16절)으로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16절) 분으로 표현하고 있다. 
즉, 구원을 베푸시는 그분을 맞이하는 것이 기쁨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한편 “손에 키를 드시고”(17절) 심판하시는 심판관이시기도 하다. 그러나 이 심판이란 말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그리스도께서 구원에 대한
권한을 가지고 계신다는 의미이다(참조: 요한 3,17). 

세례자 요한의 설교는 엄한 윤리적인 경고를 포함하고 있지만, 사실은 구원이 우리에게서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 하는 조그마한 일들 안에 그리고 많든 적든 우리가 가진 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능력 속에 있다고 한다. 
“옷을 두 벌 가진 사람은 못 가진 이에게 나누어 주어라. 먹을 것을 가진 사람도 그렇게 하여라.”(11절).군인이든 세리이든 어떤 사람이건 구원에서 제외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올바르게 행동하느냐, 특히 사랑으로 행동하느냐 하는 것이다. 
즉 우리는 매일 행동하고 말하는 가운데 항상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고 가르침으로써 마음을 밝혀주고 있다. 

“회개”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회개는 매 순간의 생활에서 자신의 가장 좋은 것을 드러냄으로써 순수하게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누구이든 간에 무슨 직업을 가졌다는 것이 중요하지 않고,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살며 활동하는 그곳에서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즉 그분의 대림은 바로 우리의 삶 속에 있는 것이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이 같은 사실이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것이다.

필립비서는 처음부터 함께 사는 기쁨, 복음을 전하는데 협력하는 기쁨, 그리고 믿음에 관한 기쁨 등에 대한주제가 계속 이어진다(필립 1,4.18.25; 2,2.17.18.28.29; 3,1; 4,1.4,10 참조). 
그것은 주님께서 오심이 내가 당하는 고통 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고통 안에 이미 와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겪는 육체적이든 영적이든 고통 중에 있는 바로 그때가 내 옆에 계시는 그리스도를 알아보고 느낄 수 있는 새로운 눈을 갖는 것이다.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고통과 궁핍에 놓일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경우에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필립 4,6) 아뢸 때, “사람의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평화”(필립 4,7)가 우리의 마음과 생각 속에 스며든다고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쉽게 얻어지는 기쁨이 아니다. 
그것은 극적인 사건이나 고통을 통해 그리고 형제들에게 자신을 내어주기 위해 자신을 잊어버릴 줄 아는능력에서 생겨난다. 특히 고통 속에서 우리는 그때를 바로 은총의 때로 체험하는 경우가 많다. 그때가 은총의 때이기 때문에 고통의 신비라고 할 수 있다. 그 때문에 우리는 기쁨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이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세례를 받고 성당에는 다닌다고 하여도 마음에 와닿는 것이 없다는 말만 한다. 

성당에서 또 피정에서 아무리 아름다운 강론을 많이 듣는다고 하여도 그래서 그 순간 우리의 마음을온통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고 해도 구체적인 나의 삶 속에서 그것이 의미를 갖고 실천되지 못하면우리의 귀는 한없이 수준이 높아질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우리의 신앙생활은 매일 똑같은 모습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이다. 
이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는 이 기쁨을 나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기쁨이나 행복은 다른 사람이 만들어줄 수 없다. 오직 자신만이 만들어 누릴 수 있는 것이다. 항상 기쁨을 만들려 노력하고 그 기쁨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눌 수 있는 삶이 되도록 하여야 한다.

마더 데레사는 이렇게 말한다. 
“기쁨은 기도이고 굳셈이고 사랑이며 사랑에 대한 갈증이다. 기쁨으로 우리는 생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기쁘게 베푸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기쁘게 베푸는 분은 더 많이 베푸십시오. 하느님께 그리고 사람들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의 감사 표시의 방법은 모든 것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만족할 줄 아는 마음은 마음이 사랑으로 타오를 때 자연히 생겨나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기쁨을 망각하게 할 수 있는 그 어떤 슬픔도 여러분 안에 자리 잡지 못 하게 하십시오.”

 

- 조 욱현 토마스  신부님 묵상 글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