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5일 주님 성탄 대축일
이사야 52,7-10
히브리 1,1-6
요한 1,1-18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루카 2,19)
찬미 예수님,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주님 성탄을 축하드리며, 교구민 한분 한분 모두에게 주님께서 탄생하시듯, 충만한 은총을 누리시기를 빕니다.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완전한 구원을 이루어주시기 위하여, 아주 긴 시간을 기다리셨습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시어 믿음의 역사를 시작하시고, 그 후손인 다윗에게 구원자 메시아를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아들이시며 말씀이신 예수님을 우리 가운데 보내시어, 우리를 당신과 다시 화해시켜주시고 구원을 이루어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긴 시간을 기다려주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이집트의 비참한 노예 생활에서의 기적적인 탈출과 황량한 광야에서 40년 힘든 여정에 만나와 메추라기로 하루도 거르지 않고 양식을 베풀어주시면서 그들에게 하느님의 자비를 뼛속 깊이 새겨주셨습니다.
그리고 약속의 땅 가나안을 차지하고, 주변의 나라가 부러워할 만한 문화를 이루어주시어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자부심을 충분히 느끼게 해주셨습니다.
비록 그들이 하느님의 뜻에 등을 돌리고 타락한 역사에 빠져 유배의 고통을 겪게 되지만, 그 고통의 시간에, 지난 긴 역사에서 하느님께서 보여주신 하느님의 자비와 권능을 돌아보고 깊이 회개하여 하느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도, 그들 몸속 깊이 새겨져 있던 하느님의 진실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가난하고 가진 것 없던 시절에도, 부유함을 누리며 하느님의 뜻을 잊고 살던 때에도, 하느님께서 자신들에게서 눈을 돌린적이 없으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특히 유배의 긴 고통의 시간 속에서 자신들이 왜 이렇게 비참해졌는지 반성하면서 이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이제 그들은 오래전부터 주님께서 해주신 약속 곧 메시아를 기다립니다. 다윗 가문에서 영원한 왕권을 세워주시리라는 약속이었습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태어날 한 아기에게 왕권이 주어지고 그 이름이 용맹한 하느님이요 평화의 군왕으로 불릴것이라며, 다윗의 왕좌와 그의 왕국 위에 놓인 그 왕권은 강대하고 그 평화는 끝이 없으리라고 예고합니다(이사 9,5-6).
그런데 그 아기는 화려한 왕의 모습이 아니라 가난하고 비천한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십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아이를 낳는데, 여관에 빈방이 없어서 아기는 말구유에서 태어납니다. 이미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자리에서 이 세상에 우리와 같은 모습으로 당신을 낮추어 오신 주님은 그 태어나신 자리도 이렇게 낮은 곳이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많은 것을 누리려고 하다 보면, 낮은 곳에 임하시는 주님을 만날 수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말씀이신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이렇게 비천한 모습으로 우리 가운데 오셨다면, 이 땅에는 그분의 탄생을 겸손되이 받아들인 두 사람이 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입니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아들을 잉태하게 되리라는 천사의 말에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묻습니다. 이는 의심하는 질문이 아니었습니다. 비천한 자신이 주님의 어머니로 선택되었다는 말에 더할수 없이 놀라는 반응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이라는 천사의 말에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대답하는 데에서, 마리아가 평소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마리아는 주님의 종이라는 분명한 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아기 예수님 탄생에 관해 목동들이 전하는 놀라운 소식을 들었을 때,
그리고 어린 예수님이 성전에서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라고 했을 때, 그 말의 뜻을 알아듣지 못하면서도 이 모든 것을 마음에 간직할 수 있었습니다(루카 2,19.49-51). 요셉은 마리아와 약혼한 사이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아이를 잉태한 것이 드러났습니다. 요한복음 8장의 간음한 여인처럼 이스라엘의 율법에 따라 마리아도 돌에 맞아 죽어야 할 처지였습니다. 요셉이 그렇게 한다 해도 그를 비난할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조용히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마리아가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보내 주려고 결심한 것입니다. 이보다 더 착한 사람이 없을 듯 싶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뜻은 달랐습니다.
마리아가 아이를 잉태한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는 천사의 말을 듣고 요셉은 마리아를 아내로 맞이하였습니다. 요셉은 여기에서 인간의 선한 생각도 하느님의 뜻에 미칠 수 없다는 사실을 배우고, 기꺼이 하느님께서 예수님과 마리아를 통해 하실 일에 자신의 삶을 봉헌합니다. 이렇게 마리아는 구원자 그리스도를 세상에 낳아주는 도구로, 요셉은 이 일에 꼭 필요한 협력 자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주님의 자비를 믿고 사는 우리는 구원의 역사에서 마리아로 혹은 요셉으로 불림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마리아처럼 주님의 거룩한 도구로, 요셉과 같이 협력자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우리 가운데 태어나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형제자매님들 한 사람 한 사람 안에 사십니다. 그분에게 시선을 주십시오. 고해성사 안에서 기다리시는 그분에게 가십시오.
성체성사를 통해 당신 자신의 생명을 주시는 그분에게 달려가십시오.
가난한 이웃 형제들에게 손을 내미시는 그분의 손이 되어주십시오.형제자매님들 안에 주님께서 태어나시길 기도합니다.
주님의 강복을 여러분 모두에게 전합니다.
- 천주교 대전교구 김 종수 아우구스티노 주교님 묵상 글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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