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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복음 묵상(마르코 12,18-27) - 성 보니파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까치산 2024. 6. 5. 10:26

 

 

연중 제9주간 수요일

  
2티모1,1-3.6-12
마르코 12,18-27

"부활에 대한 논쟁"

 
오늘 복음은 "부활에 대한 논쟁"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사두가이파 사람들은 영생이나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였는데,사도행전을 보면 사도 바오로가 유대인들에 붙잡혔을 때 이 두파의 교리가 대조적인 점을 이용하여 의회에서 연설하여 풀려나온 일도 있습니다. 그리고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평신도들이었으나 사두가이파는 귀족이나 부호들 출신이었고 그 대부분은 제사직(사제직)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비교적 안정되고 특권을 누리고 있었고 그들 가운데서 지배자들도 나왔습니다.

또 사두가이파는 성문화된 모세 5경만을 귀중하게 여기고 바리사이파가 귀중하게 여기던 구전상의 율법이나 관습, 규정 등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 사두가이파들이 예수를 시험하려고 왔습니다. 예수님은 평소에 바리사이파 들에게도 질문을 받은 일이 있고 또 사두가이파들에게서도 질문을 받게 된 것입니다. 사두가이파들은 그들이 귀중하게 여기는 모세 5경 중에 신명 25, 5-10에 나오는
수혼제도(嫂婚制度)라는 율법을 가지고 부활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증명하려 했습니다.

신명 25, 5-10을 보면 이 수혼제도에 대해 나옵니다.
즉 여러 형제가 한 집에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자손이 없이 죽으면 죽은 형의 미망인을 아내로 삼고 형을 위하여 자손을 이어주는 것이 다음 동생의 의무로 나옵니다. 그리고 자손이 생기면 본래 남편의 자손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 율법의 목적은 가족의 명칭이 유지되고 가족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사두가이파 사람들은 율법에 근거를 둔 이스라엘의 수혼제도를 가지고 부활이 없음을 증명하려고 한 것입니다. 즉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하면 부활 후에 그 여자는 누구의 아내가 될 것이냐는 것입니다. 정말 어려운 질문이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해 예수께서는 두가지 점을 강조하면서 답변하신 것입니다.
첫째, 부활한 육신은 육체적인 욕망이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다음에는 시집, 장가가는 일이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처럼 된다는 것입니다. 즉 부활한 후에는 육체적인 욕망같은 것은 없게 되고 천사와 같은 기쁨의 생활을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하느님은 살아있는 자의 하느님이라는 것입니다 :
사람이 부활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즉 탈출 3, 6을 보면 모세가 하느님을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을 보면 사람이 죽은 후 살아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하느님은 언제나 살아계시기 때문에 죽은 자의 하느님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나 이사악, 야곱이 죽고 또 살아 있지 않다면 모세가 하느님을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고 불렀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는 것이 모세 5경에서도 증명된다는 것입니다.

여하튼 예수님은 살아 생전에 바리사이파나 사두가이파나 그밖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질문을 받고 시험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로 인해 그 모든 신비가 벗겨진 것입니다. 특히 그분의 부활을 알고 또 믿는 우리로서는 이 질문이 별로 큰 문제는 안될 것입니다만, 그러나 우리 주위에서 예수 부활에 대한 질문을 듣게 될 때
우리도 예수의 논증과 같이 그 확실한 믿음과 답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 증명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을 부활시켜 주시는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신 천주님!
우리는 비록 한번 죽게 되더라도 당신의 능력으로 부활하리라 믿습니다. 살아 생전에 당신을 믿고 따름으로서 부활의 영광을 우리에게도 주소서.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 서울대교구 김 웅태 요셉 신부님 강론 글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