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인과 그리스도인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리스도인이 아닌 종교인이 되기 쉽습니다.
늘 깨어 근신하며 분별해야 하겠습니다.
종교인은 눈에 보이는 것을 좇아갑니다.
더 큰 건물, 더 많은 사람들,
돈과 부귀 영화, 유명세를 추구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추구합니다.
종교인은 이 세상의 것에 목숨을 겁니다.
그리스도인은 영원한 것에 목숨을 겁니다.
종교인은 롯처럼 눈에 보이는 풍요를 선택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아브라함처럼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느님의 뜻과 길을 늘 신뢰하고 선택합니다.
종교인은 기복신앙을 갖고 있어
언제나 합격과 성공, 축복을 기원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시편 1편의 복과
마태5, 3-1절의 팔복 신앙을 갖고 있어
언제나 먼저,
하느님 나라와 그 의를 간구합니다.
종교인은 자신이 이미 갖고 있는 것은 제외한 채,
하느님이 더 큰 물질을 주시고
성공하게 해주셔야지만 주신 그 물질로
주님의 일을 잘 할수 있다고 단서를 달면서
자신의 기복신앙과 세상에 속한 욕심을 합리화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맛본 아이처럼
자신이 가진 것부터 드리고 나누는 자입니다.
그럴 때 하느님의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을 아는 자입니다.
종교인은 기아, 난민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늘 부족하다고 하느님께 요구하고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항상, 자기가 가진 것을 족하게 여깁니다.
종교인은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자기를 미워하며
날마다 자아를 십자가에 넘깁니다.
사도 바오로처럼 "나는 매일 죽노라"고 고백하는 자입니다.
종교는 남을 이용하여 자신의 성(바벨론城)을 쌓는 것이며
그리스도인의 도는 남을 돕기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입니다.
종교인은 율법을 중요시하지만
그리스도인은 복음을 중요시합니다.
종교인은 형식과 체면을 중요시하지만
그리스도인은 내용과 본질을 중요시합니다.
종교인은 겉모양을 보고 모든 것을 판단하지만
그리스도인은 마음에 숨은 동기와
하느님의 공의로 분별하려 합니다.
종교인들은 날과 절기에 목숨을 걸고 집착합니다.
그것만 지키면 하느님 앞에서 자기 할 일이 끝났다는 듯이
주변사람들의 상처에 개의치않고 당당히 외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날,
모든 재물이 다 주님의 것이라고 믿고 고백할 뿐 아니라
하느님의 의(義)와 인(仁)과 신(信)의 청지기로 삽니다.
종교인은 버림받은 사울왕이나,
저주받은 바리사이들처럼
사람의 영광이나 칭송을 사모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사람의 영광이나 칭찬에 얽매이지 않으며
오직 하느님의 영광을 사모하며 갈구합니다.
종교인은 사람의 눈치와 체면을 따라 행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어린양이 인도하시는데로 행합니다.
종교는 종교지도자가 우두머리가 되는 피라미드식 구조이지만
그리스도인의 도는 지도자가 종이 되는 역피라미드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속는 중요한 사실 하나가 있습니다.
종교성에 충만한 자들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많은 권능을 행한다는 사실입니다.(마태 7, 22)
사탄의 역사를 따라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이 나타날 때
분별력이 없는 무수한 신자들이 사탄의 기적을
하느님의 기적이라고 굳게 믿어버립니다.
사탄의 역사는 항상 사람을 높이지만
하느님의 역사는 항상 사람을 낮추는 특징이 있습니다.
사탄이 역사하는 신자들의 마음은 언제나 높은 곳에 있습니다.
그들의 믿음이 최고이고 그들 주장이 유일한 진리라고 하지만
하느님의 사람들은 언제나 겸손하며, 배우고 분별하려고 애씁니다.
종교인이 보여주는 능력과 표적과 많은 권능으로
구름 떼같은 사람을 모아 번성할 수 있겠지만,
그 결과는 황당하게도 밖에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것입니다.
종교의 도가 음녀(창녀)의 도라면
그리스도인의 도는 신부의 도입니다.
쭉정이인지 알곡인지 육안으로 봐서는 알 수 없듯
창녀와 신부 역시, 겉모습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하느님과 복음을 이용하여 나의 유익을 구했다면 창녀요,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위하여 나를 버렸다면 신부입니다.
음녀에게는 심판이 신부에게는 신랑이 기다립니다.
-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사방에서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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