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사랑과평화

아름다운 동행

까치산 2009. 12. 19. 10:47



     
    아름다운 동행   
    건널목에서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보행 신호가 켜지자 사람들은 종종걸음, 8차로인데도 
    우리 병원 앞 신호등은 
    언제나 아슬아슬하게 신호가 바뀐다.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 사이로 한 여자아이가 눈에 띈다. 
    다리가 불편해 걸음이 느리다. 
    모두들 다 건널 즈음인데도 
    이 아이는 아직 중앙선을 넘지 못하고 있다. 
    보기에도 안쓰럽다. 
    그때 고등학생쯤으로 보이는 두 아이가 
    뒤늦게 건널목을 건너려고 뛰어든다. 
    물론 그 아이들의 걸음으로는 무사히 건너기에 문제가 없다. 
    한데 뒤처져 건너는 여자아이를 발견하곤 아이들이 걸음을 멈춘다. 
    그리곤 무슨 약속이나 한 듯 한 걸음쯤 뒤처져 여자아이를 따라간다. 
    그가 눈치 못 채게 하려는 게 분명해 보인다. 
    자칫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다. 
    혹은 자신들의 배려에 행여 부담을 느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을 것이다. 
    아이들의 세심한 배려가 내 마음을 사로잡는다. 
    신호는 꺼졌고 다리는 불편하고, 
    슬슬 차가 움직이는데 얼마나 불안할까. 
    인간은 이런 순간 깊은 소외감, 고독감에 빠지게 된다. 
    이럴 때 함께 걷는다는 건 그 아이의 불편을, 
    아픔을 함께 나눠 갖겠다는 것이다. 
    중앙선을 겨우 넘자 신호가 벌써 바뀌었다. 
    아이들은 손을 들어 운전자의 주의를 환기시킨다. 
    여자아이도 안간힘을 쓰는 게 뒤에서 봐도 역력하다. 
    그 아이는 부축을 필요로 하는 것 같진 않아 보였다. 
    그저 느릴 뿐이었다. 
    거기다 오른쪽 어깨에 가방까지 흔들거리니 더 힘들어 보였다. 
    가방을 들어주랴, 남자아이가 조심스레 손을 내민다. 
    여자아이가 고개를 흔든다. 
    그리곤 몇 걸음 옮기더니 가방을 벗어준다. 
    남자아이가 쑥스럽게 받아든다. 
    여자아이도 지금쯤 이 남자아이들이 왜 뜀박질을 멈추고 
    자기 옆을 호위하고 있는지를 알아차렸겠지. 
    이젠 외롭지도 무섭지도 않다. 
    그 따뜻한 배려가 고맙다. 
    가방을 들어 주겠다는 호의도 고맙다. 
    그렇다고 체면 없이 벗어주기엔 미안하고. 
    하지만 행여 남자아이가 무안해 하지나 않을까…. 
    이런 생각들이 바쁘게 오갔겠지. 
    내게 이 장면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믿음과 사랑을 나눈 감동적인 순간이다. 
    아스팔트 정글, 붉은 신호를 건너고 있는 긴장의 순간, 
    성급한 운전자들이 차마 출발은 못하고 
    으르렁대는 이런 긴박한 상황에서 이 아이들이 보여준 
    믿음과 사랑의 나눔은 한 편의 수채화처럼 아름답다. 
    생면부지의 아이들, 그들 사이엔 한 마디 말도 없다. 
    하지만 거기엔 따뜻한 인정의 가교가 놓여 있다. 
    이 아이들이 다 건너기까지 인내심 있게 
    기다려준 운전자들도 고마웠다. 
    누구 하나 클랙슨을 울리지 않고 
    조용히 기다릴 수 있다는 게 참 신기했다. 
    그들도 이 아름다운 아이들을 지켜보면서 
    마음속으로 수채화를 그리고 있었겠지. 
    신호가 바뀌기도 전에 클랙슨을 울리며 출발하는 
    한국인의 운전 습관으로선 참으로 기적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무사히  건너온 사내아이들이 가방을 내민다. 
    여자아이가 가벼운 목례를 하고 받아든다. 
    그리고 서로 반대 방향으로 돌아서 간다. 
    저만치 가던 사내아이들이 뒤돌아본다. 
    붐비는 차 사이로 잘 보이진 않지만 잘 가! 하는 
    아이들의 소리가 들릴 듯하다. 
    저 아이들이 각박한 도심의 살풍경을 장미꽃 화원으로 바꾸어 놓았다.
    회색빛 거리가 갑자기 환하게 밝아졌다. 
    대단한 아이들이다. 달려가 덥석 안아주고 싶다. 
    택시가 내 앞에 멈춰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난 그 아이들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고 있었다. 
    어떤 아이들일까? 
    아! 요즈음 세상에도 아이를 저렇게 가르치는 부모가 있구나.
    어떤 사람들일까? 그 아이들의 가정 분위기까지 궁금해진다. 
    불과 몇 분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하지만 한 편의 아름다운 영화를 본 듯 황홀했다. 
    난 그날 오후 내내 이 생각으로 흐뭇하고 즐거웠다. 
    요즈음 아이들! 
    말만 들어도 우린 혀를 차고 고개를 내젓는다. 
    하지만 주위엔 아름다운 아이들도 많다. 
    그게 안 보인다면 요즈음 어른들  모습은 어떤지 
    우리 자신을 되돌아봐야 한다. 
    - 이시형 사회정신건강연구소 소장-(옮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