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느님의 방법
왜 많은 믿는 사람들이 기도를 안 합니까?
또 기도를 해도 왜 중간에 포기합니까?
기도가 응답된다는 것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왜 믿지 못합니까?
기도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기도해도 별 수 없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기도를 안하고 결국 기도의 축복을 놓치는 것입니다.
그것은 기도가 무엇인지를 오해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기도에 분명히 응답하시지만
그 응답이 "하느님께서 우리가 기도한 그대로 주신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하느님의 응답은 "예스!(Yes)" 이상의 어떤 것입니다.
'하느님의 주심'은 '우리의 구함'보다 훨씬 지혜롭고 다양합니다.
하느님은 어떤 방법으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십니까?
1. 하느님이 우리의 기도에 "노!(No)" 하고 응답하실 때
언제 "노!" 하고 응답하십니까? 우리가 잘못 구할 때 "노!" 하고 응답하십니다.
"하느님! 복권에 당첨되게 해주세요!
이번 노름판에서 따게 해주세요!"라고 하면 하느님께서
응답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하느님! 고난이 전혀 없게 해주세요!" 하는 기도도 잘못 구하는 것입니다.
"하느님! 고난이 있어도 이길 힘을 주세요!"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더 '출세'하도록 능력을 구하지만
하느님은 더 '순종'하도록 약함을 주실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더 '큰 일'을 하도록 건강을 구하지만
하느님은 더 '좋은 일'을 하도록 병을 주실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더 '즐겁게' 살도록 부를 구하지만
하느님은 더 '현명하게'
살도록 가난을 주실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더 떵떵거리며 살도록 많은 것을 구하지만
하느님은 더 기도하며 살도록 우리에게 아주 적게 주실 때도 있습니다.
나중에 따져보면
우리가 구한 것을 얻지 못해도 우리는 더 큰 것을 얻은 셈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기도한 대로 응답되지 않아도
하느님의 크신 뜻을 생각하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2. 하느님은 우리의 기도에 "기다려라!" 하고 응답하실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스피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30초 이상 기다리면 참지 못하는 시대입니다.
모든 것이 빨리 처리되고 빨리 결과가 나타나기를 원합니다.
기도도 빨리 응답되기를 원합니다.
그처럼 결과를 중시하지만 사실 과정도 중요합니다.
우리는 결과보다 과정에서 더 많은 교훈을 얻습니다.
기도가 바로 응답되면 배우는 것이 별로 없지만
기다린 후에 응답되면 그 기다리는 과정 속에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때로 하느님은 기도 응답뿐만 아니라
그 기도 응답을 주시는 과정 속에서 우리에게 많은 것을 보너스로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기도 응답을 지체하시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므로 이 타이밍에 대한 열린 시야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들은 기도응답이 지체되는 이유를 잘 모르겠지만 하느님은 그분의
완전한 지혜와 능력으로 어느 시간이 가장 좋은 시간인지를 잘 아십니다.
하느님의 조치를 신뢰하고 여유를 가지고 가장 적절한 시간을 기다리십시오.
모든 것에는 제 철이 있습니다.
3. 하느님은 우리의 기도에 "좀더 성숙해라!" 하고 응답하실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 응답을 막는 가장 큰 장벽은 대개 우리 자신입니다.
하느님께 어떻게 해 달라고 강하게 요구하면서 죄는 그대로 두고,
다른 사람들은 변화시켜 달라고 하면서 자신은 변화되려고 하지 않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기도 응답을 주시기 전에 우리가 좀 더 성숙하기를 원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도 응답은 종종 우리의 믿음의 성장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만약 우리의 기도가 응답 받기를 원하면 먼저
우리 안에 있는 불신과 죄를 떠나야 합니다.
기도에는 바른 기도가 있고 잘못된 기도가 있습니다.
누가 바른 기도를 드리고, 누가 잘못된 기도를 드리는지 사람이 그 차이를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바른 기도를 드릴 때 꼭 한 가지 나타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삶의 변화'입니다.
'기도'라는 말의 헬라어 '프로쉬케'는 내 소원을 이뤄달라고 떼를 쓰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앞에서 나를 조율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사람은 자연히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많이 기도해도 삶의 변화가 없다면 그것은 대개 일방적으로 내 욕심만 이루어달라고
주문(注文)했기 때문입니다.
기도에 주문(注文)만 있으면 자칫하면
무속 신앙에서 그들의 방식대로 중얼중얼 대는 주문(呪文)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제 하느님께 달라고만 하기보다는 하느님께 나의 변화를 보여드리는
성숙한 기도자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 이한규님- (가사방에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