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기도♣
-동은 스님 -
부처님!
새해를 맞이하는 이 아침에
향 하나 사르고 소박한 기도 올립니다.
부디.
''이것도 기도냐?" 하지 마시고
어여삐 봐 주셨으면 합니다.
먼저
'다름'을 인정하고
'틀림'을 고쳐 나갈 줄
아는 지혜를 갖게 하소서.
초하루 법회 때
노보살님들 소원 담아
꽂아 놓은 향으로 향로가 가득하여
부처님께서
''아이고, 매워라." 하셔도
눈살 찌푸리지 않게 하소서.
그 향연들이
서리서리 맺혀 있는 법당에서,
그분들의 고뇌를 진실로
부처님께 기도 드릴 수
있는 신심을 갖게 하소서.
몸이 아파
거동조차 못하고 누워 있는데,
상담하러 오신 분이
아들 사주 봐달라며 떼를 쓰실 때
''난 그런 거 못 봐요.
다른 절에 가보세요." 하여
씁쓸한 기분으로
돌아가지 않게 하소서.
오히려 그분께
사주팔자보다 더 좋은
부처님 말씀 한 구절
가슴에 새겨 갈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공양 후 산책길에서 만나는
새들과 나무 지나가는 지렁이에게까지
안부를 전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지게 하소서.
길을 가로 질러 열심히
기어가는 지렁이가
차에 치어 돌아가시지 않게.
길 옆 숲으로 옮겨주는
자비심을 갖게 하소서.
몇 번 하다가
''내가 어떻게 이 많은 지렁이를
다 옮겨 줘. 지 팔자지 뭐'' 하고
포기 하지 않게 하소서.
스님이라고 무게 잡고 살지 않고
기쁠 때 같이 웃고,
슬플 때 같이 울어주는
인간적인 수행자가 되게 하소서.
"난 허리가 아프니까.
그리고 무릎도 수술했으니까,
오늘은 몸이 좀 안 좋네.
새벽예불 빠져도
부처님은 이해하실 거야."
라며 자신을 합리화하여
나태해지지 않게 하소서.
출가 첫날,
그 간절함이 늘 살아 숨 쉬어
수행자의 본분을 잊지 않게 하소서
끝으로
공찰 주지 소임 다하고 떠날 때,
가벼운 걸망 하나 지고
훌훌 떠날 수 있게 하소서.
그리하여 언젠가
이 사바세계를 떠나며
옷을 바꿔 입는 날 난 참으로 행복한
수행자의 삶을 살았노라고
미소 지으며 갈 수 있게 하소서.
그리고 부처님,
기도 를 하다 보니
''하소서" "주소서" 만 해서 죄송합니다.
좀 더 정신 차리고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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