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사랑과평화

“나는 온유하고 마음이 겸손하기 때문입니다.”

까치산 2010. 10. 7. 11:15
      ♠ “나는 온유하고 마음이 겸손하기 때문입니다.” ♠ 겸손 또한 안식과 평안을 위한 전제조건이다. 구약성서에서 벌써 온유함과 겸손함은 서로 연계되어 고찰되었다. 겸손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tapeions는 낮은 것을 의미한다. 겸손을 의미하는 라틴어 ‘humilitas'는 겸손을 우리가 땅에서 생겨난 존재이고 땅에 부착되어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용기로 해석하고 있으며, 자신이 이 땅에서 유래한 존재이기 때문에 이 땅에서 존재하는 것을 받아들일 용기를 갖는 것과 자신을 피조물 이상으로 들어 높여 세우려하지 않는 용기를 갖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최종적으로 겸손은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눈으로 똑바로 보는 용기이다. 자신이 소유한 자신에 대한 높은 이상적인 생각에서 아래로 내려와서 구체적인 인간으로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받아들이고 화해해야 한다. 자신의 진면목에 눈을 감지 않는 사람,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으로부터 도망치지 않는 사람만이 안식과 평안을 누릴 수 있다. 내가 나의 참모습을 바라보고 인정하지 않는 동안에는 내적으로 결코 조용할 날이 없을 것이다. -「다시 찾은 마음의 평화」중에서 겸손한 자만이 안식과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겸손은 온유함과 연계해서 고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과연 진정한 겸손이란 무엇일까요? 쉬운 말로 자신의 주제 파악을 하지 않으면 겸손은 물 건너간다는 것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참 나를 나는 만난 적이 있는가? 쉬운 이야기 같지만 가장 어려운 질문입니다. 언젠가도 위에서 이야기 한 적이 있는데, 여러 개의 내가 존재하여 혼란 속에 거짓 자기로 살고 있지는 않는지요? 1) 남에게 보여 주려고 하는 나 2) 남이 나를 나라고 평가하는 나 3) 내가 나라고 생각하는 나 4) 내가 되고 싶어하는 이상적인 나 5) 지금, 여기 내가 되어 가는 나(becoming) 6)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나(참 자아) 위에 열거한 중에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나” 말고는 다 거짓 자아입니다. 6)번을 제외하면 1)―5)번까지는 나를 거짓 자아로 만들어 가는 재료들입니다.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갈 인간 존재의 무상함을 깨닫고 성 아우구스티노의 고백록의 말씀처럼 “하느님 당신이 날 내셨으니 당신 안에 쉬기까지는 (항상 불안합니다). 안식을 누리지 못합니다.” 우리도 날마다 고백하며 남의 평가에 휘둘려 거기에 맞추려다가 남의 노예가 되고 거짓 자아가 형성되어 한 번도 참 자아로 살지 못하면 절대자이신 하느님 앞에 설수가 없습니다. - 김홍언 요한 보스코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