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 말씀 (마태오,26,14-25 )
유다는 스승을 팔아넘기는 대가로
"은돈 서른닢"을 받습니다.
그가 먼저 수석 사제들에게 제안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정말 돈 때문에 그랬을까요?
배신의 원인이 돈이었다면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하지만 삼 년을 제자로 있던 사람이 다만 돈 때문에
돌아섰다는 것은 어딘가 석연치 않습니다.
다른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돈 때문에 망치고 있는 이들을 봅니다.
돈 빌린 사람이 "갚지도 않고" 성체를 모신다고,
성당에 안 나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돈거래 때문에 "대부 대자" 관계인 사람들이
법정에 서는 것도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순수한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서로가 "멍든 관계"로 바뀌었습니다.
사람보다 돈을 먼저 생각한 결과입니다.
유다 역시 스승님보다 "다른 무엇"을 우선으로 여긴 것이
아닐는지요?
그러나 결과는 배신이었습니다.
그는 스승님을 배반하고 자살한 사람으로 역사에 남았습니다.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은 용감한 일입니다.
하지만 내적 성찰이 따르지 않으면 "자신의 고집"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에게
더 좋았을 것이다." 비장하신 말씀입니다.
그만큼 가슴 아프시다는 표현입니다.
이렇듯 스승님께서는 제자의 배신을 받아들이심으로써
자신의 십자가 길을 걷기 시작하셨습니다.
ㅡ매일미사 오늘의 묵상에서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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