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모습이 얼마나 중요한지!”
너희 중의 두 사람이 이 세상에서 마음을 모아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는 무슨 일이든 다 들어 주실 것이다.
"단 두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함께 있으니,
이 세상에서 마음을 모아 아버지께 청하라”는 복음 말씀은 우선적으로 하느님과
우리와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설명해 줌과 동시에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서
어떻게 역사(役事)하시는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해 줍니다.
하느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실존적으로 연계시켜 주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우선 “이 세상에서 마음을 모아 아버지께 청하라”는 말씀을 근거로 기도에 관해
생각해 봅시다.
여기서는 개인적인 욕구나 원의를 충족시키기 위한 청원의 기도에 대해서가 아니라,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함께 마음 모아 기도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자신도 끊임없는 기도의 삶을 통해 아버지 하느님과 일치하셨을 뿐만 아니라,
기도를 통해서 아버지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간파하시고자 하셨습니다
마태 14,23; 마르 1,35; 루가 3,21; 23,34).
예수께서는 당신 스스로가 그러하셨듯이 제자들에게도 자주 기도하고 끊임없이
기도하라고 당부하십니다 (루가 11,5-13; 18,1-8; 21,36).
신앙인이 기도한다는 것은 하느님 앞에 나서는 삶의 자세와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려는 신앙의 몸짓을 의미합니다.
하느님은 나만의, 나만을 위한 하느님이 아니십니다.
그러기에 같은 믿음 안에서 마음을 모아 함께 기도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하느님의 영광과 뜻을 드러내 보이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은 하느님의 뜻이 우리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고, 하느님의 나라가 와 있음을 전해 주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기도의 삶이란 필연적으로 형제들과의 수평적 관계 안에서 용서와 사랑의
실천을 전제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기도를 바칠 때마다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합니다.
그처럼 우리는 형제들과의 관계에서 용서와 사랑이 먼저 실천되어야, 하느님께서도
우리를 용서와 사랑으로 대해 주신다는 것을 스스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조건 없이 용서하시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렇게 죄를 용서받은 우리를 통해, 세상에 평화와 기쁨을 나누어
주시고자 하십니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도 우리요, 세상을 고통과 시련의 땅으로
만들어 갈 수 있는 것도 우리입니다.
하느님의 뜻이 세상에 펼쳐질 수 있게 하는 것도 우리요,
갈등과 분열을 조장할 수 있는 것도 우리입니다.
우리는 기도하는 삶을 통해서만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뜻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도구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낼 수 있습니다.
용서와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삶, 그것은 기도하는 삶 안에서 하느님과 일치하는
모습을 갖출 때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남북 통일의 염원도 거기서부터 시작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 안병철 베드로 신부님 (가사방에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