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사랑과평화

예수님의 모습

까치산 2011. 4. 18. 13:28

예수님의 모습 예수님은 갑자기 모습을 바꾸신다. 세상 모습이 아닌 천상 모습이다. 제자들은 깜짝 놀란다. 아무런 준비도 예고도 없이 스승의 본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까. 분명한 것 하나는 그분께서 의도적으로 하셨다는 점이다. 핵심 제자 세 사람만 데리고 가신 것과 좀 처럼 정체를 드러내지 않으시던 분이 하늘의 모습을 송두리채 드러냈기 때문이다. 스승은 알고 있었다. 미구에 당신이 고통받고 십자가의 길을 간다는 것을.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제자들이 흩어진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스승은 힘을 실어주고 싶었다. 십자가의 길을 걷는 당신을 보더라도 놀라지 말라고. 지금 보는 천상 모습이 당신의 참 모습임을 잊지 말라고. 그러나 제자들은 잊어버린다. 정작 그날이 왔을 때는 아무 것도 생각해내지 못한다. 잡혀가는 스승을 보면서 그들은 겁에 질려 숨어 버렸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부활을 체험한 뒤에야 제자들은 알게 된다. 십자가를 선택하신 스승의 뜻과 가르침을 알게 된다. 그러자 살아 생전 보여 주셨던 모든 것의 의미가 드러났다. 한없는 배려와 사랑을 비로소 깨달았던 것이다. 다시 옛날로 돌아갈 수 있을까. 제자들이 망설임을 딛고 일어선 것은 스승이 남긴 따뜻함 때문이었다. 지난날의 사건들이 그들에게 힘이 되었던 것이다. 누구나 신앙의 길을 가면서 사막을 체험한다. 아무 것도 보잊 않고 메마른 모래만이 느껴지는 교회생활을 만날 수 있다. 그만 두려해도 불안한 두려움이 발목을 잡는 체험이다. 어떻게 사막을 벗어났던가. 누가 오아시스를 알려주었던가. 주님의 변모는 당시 제자들에게서 끝난 사건이 아니다.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끊임없이 현존하는 사건이다. 돌아보면 우리에게도 주님의 변모에 해당되는 사건들이 수없이 있었다. 그 사건들을 기억해야 한다. 생각할수록 누군가가 도와주었다는 느낌이 드는 사건들이다. 누가 도왔겠는가. 주님께서 도와주신 것이다. 그분은 당신께 청하고 의지하는 사람들을 잊지 않으신다. 다만 우리가 부족한 인내와 서투른 지식으로 그분의 배려와 사랑을 잘못 해석할 뿐이다. 사순절 초두에 이 복음을 읽는 것은 삶 속에 들어와 있는 주님의 변모를 묵상하라는 배려다. 주님의 갑작스런 변모는 갑자기 오는 은총을 연상시킨다. 은총은 예고 없이 온다.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많은 사건들을 갑자기 당하는가. 인생에 아픔을 주는 사건들은 언제나 생각지도 않은 때에 불쑥불쑥 다가왔다. 그러나 지나고 보면 예외없이 흔적을 남겼다. 경각심을 남겼고 인생이 영원한 것이 아님을 느끼게 했다. 이 세상이 영원한 것이 아님을 느끼게 했다면 얼마나 큰 은총인가. 살면서 이 만남은 분명 주님께서 개입하신 만남이다. 이렇게 느끼는 만남이 있다면 그것 역시도 주님의 변모 사건이다. 그런 만남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과 힘을 느낀다면 우리 역시 영원을 목격하고 체험하는 사람들이다. 복음의 교훈은 바로 이 점을 깨닫는 데 있다. 그러니 제자들처럼 우리가 겪었던 사건의 추억들을 되살려 주님의 전능하심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의 만남을 떠올리며 주님의 애정을 다시 간직해야 한다. 사순절 동안 우리가 할 일이다. - 신은근 신부님(가사방에서 옮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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