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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복음 묵상(마르코 7,1-8.14-15.21-23) - 순교자 성월

까치산 2024. 9. 1. 09:33

 

 

연중 제22주일(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


신명기 4,1-2.6-8   
야고보 1,17-18.21ㄴ-22.27     
마르코 7,1-8.14-15.21-23 : 모든 죄는 마음에서 나온다.

 
오늘 말씀의 주제는 선과 악이란 사물이나 관습에 있지 않고 인간의 마음에 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실천하라고 가르쳐 주는 계명과 법규들을 잘 들어라. 그래야 너희가 살 수 있다.”(신명 4,1) 계명과 법은 우리를 속박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사랑의 선물로 이해되는 법을 말한다. 그 법은 생명의 원천이며, 윤리적 압박의 도구로서가 아니라, 자유의 원천이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그 법을 통하여 당신 백성과 가까이 계시며, 당신 백성과 대화를 계속하신다.

인간은 많은 경우에 하느님의 말씀을 인간의 편의대로 이해하고 해석하여 변질시키고 있다. 
오늘 복음의 논쟁 시작은 주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식사를 하였다는 것에 있다. “어째서 선생님의 제자들은 조상들의 전통을 따르지 않고, 더러운 손으로 음식을 먹습니까?”(5절). 조상들의 전통이라는 것은 조상들이 율법 해석으로 만든 규칙들이었다. 이 전통 중에는 모세의 율법에는 없는 많은 규정이 있다. 그들은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 자기 조상들의 전통을 선과 악의 척도로 삼고 있다. 조상들의 전통을 하느님의 계명보다도 선악의 척도로 생각하기 때문에, 형식적이고 위선적인 것이 되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들을 위선자라고 하시면서 이사 29,13을 인용하신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6-7절)  예수께서 전통을 비난하시는 또 하나의 이유는 그 전통들이 사람의 계명에 지나지 않는데도 그 전통들을 하느님에게서 오는 계명보다 더 중요시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8절) 하시는 것이다. 하느님의 뜻이 드러나기보다는 인간의 헛된 생각을 고집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인간 생활을 압박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바리사이적 형식주의가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 얼마나 만연되어 있는지를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렇다고 새로운 시대에 맞게 우리 마음을 열고 변화시키려는 마음도 가질 생각을 못 하고 그냥 전통에 물들어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지금 우리 교회 안에도, 그리고 나 자신 안에도 이러한 면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여야 한다. 나에게서 악습을 어떻게 버려야 할지를 생각하고 나 자신을 바꾸어 가야 한다. 선과 악은 우리 각자가 행하는 자유롭고 의식적인 모든 선택이 이루어지는 인간의 마음속에 즉, 인격의 심층부에 있다는 것을 설명해 주신다. 

“너희는 내 말을 듣고 깨달아라.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14-15절) 
마음 안에, 모든 죄로 가득 차 있는 그 마음에서, 하느님과 이웃을 거스르는 마음으로 더러워진다. 예수님의 말씀은(21-23절) 무섭다.  마음에서 나오는 이러한 것들이 사람을 더럽힌다고 한다. “안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이 나온다. 

이런 악한 것들이 모두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21-23절) 인간을 더럽히고
하느님과의 관계를 끊는 것은 인간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들이다. 예수님의 말씀은 인간의 모든 종교적 윤리적 생활을 발견하고, 인간 자신의 참된 모습을 발견하도록 이끌어 주신다. 인간의 참된 모습은 바로 인간의 마음에서 나오는 진실한 태도에 있다. 그러므로 음식이나 외적인 행동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의 계명은 바로 이웃에 대한 사랑이며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이 이웃에게 선을 행하는 것이라고 하신다.

이 모든 것은 하느님 말씀의 법을 순종하는 마음으로 듣고 실천함으로써, 즉 우리의 마음 안에서 생활화하고 실행함으로써 이룰 수 있다고 야고보 사도는 말한다. 
하느님께로부터는 오로지 선한 것들만 온다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진리의 말씀이 오는데 이제 그 말씀을 생활화하고 실현함으로써 능동적으로 구현시켜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진리의 말씀은 우리에게 벌이 되고 말 것이다.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말씀을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야고보 1,22) 말씀을 실천하고 있다는 척도는 특히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이웃에 대한 우리의 구체적인 태도이다. 

실천적인 신앙에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의 진실성이다. 
믿는다고 하면서 그 신앙을 증거가 되지 않으면, 즉, 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이러면 신앙 자체가 형식적인 신앙, 바리사이에 불과하다.하느님의 법은, 하느님의 규정은 인간을 구속하기 위한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규정을 어기면 죄가 된다는 것으로 규정 지키기에만 급급해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하느님과 이웃 앞에 사랑이 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하느님의 뜻으로 마음이 무장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마음에서 악한 것들이 나와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다. 의식이나 전통만을 중요시할 때 이웃을 거스르게 되며, 결과적으로 하느님을 거스르게 된다. 불결한 것은 바로 이것이며 인간을 더럽히는 것이다. 전통이나 규정을 올바로 알아듣지 못하면 그것을 더럽히는 결과가 되고 만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은 어떠한 모습인가를 반성하면서 항상 주님의 뜻으로 충만한 우리 되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 조 욱현 토마스 신부님 신부님 묵상 글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