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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복음 묵상(루카 3,1-6) - 대림 제2주일

까치산 2024. 12. 8. 10:16

 

 

대림 제2주일

바룩 5,1-9    
필리피 1,4-6.8-11    
루카 3,1-6

 "회개"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고, 오실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라고 외칩니다.

공관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 4,17)라고 선포하십니다. ‘회개하여라.’의 의미는 ‘삶을 쇄신하라.’, ‘마음과 정신을 완전히 바꾸어라!’, ‘죄에서 벗어나 하느님께로 향하라.’ 등을 뜻합니다. ‘회개’는 방탕한 짓을 그만두고 올바로 행동하라는 의미만은 아닙니다. 품행이 단정하고, 행동에 어긋남이 없고, 책임감 있고, 율법을 철저히 지키고, 기도도 많이 하는 바리사이들이 사실은 그들이 그토록 고대하던 메시아와 가장 갈등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엄격주의, 완벽주의, 율법주의, 공로 업적주의, 우월감, 중독증(권력, 명예, 폭력), 상호의존적 관계, 세심증, 간헐적 폭발 장애(분노조절장애), 편집증에 사로잡힌 이중인격자들입니다. 이러한 위선자들 때문에 백성은 도탄에 빠졌고, 결국 나라가 망했습니다.

마르코복음에서 사도들은 일면 예수님의 외침을 이해한 것처럼 보입니다.(1,16-20 참조)
그러나 그들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의미를 잘못 알아들었음을 복음의 후반부에서 분명하게 알려줍니다. 그들은 자신을 영광스럽게 하려는 생각에 십자가를 지고 종이 되라는 말씀에 귀를 막았습니다. 바리사이든 제자들이든 모두 진정한 회개,
즉 그들 자신을 분명히 대면하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이에 따라 예수님의 첫 번째 메시지는 공관 복음에서 ‘회개하여라.’이지만, 요한복음에서는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였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두 제자가 “묵고 계시는 데가 어딘지 알고 싶습니다.” 하고 말하자 와서 보라고 하셨습니다. (공동번역 요한 1,38)

이 같은 회개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는 여러 방법과 많은 단계들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에서 ~으로’라는 패턴(분열된 상태에서 온전함으로, 죄에서 은총으로, 정체 상태에서 새 삶으로의 변화)을 따르는데, 반드시 어떤 것을 ‘거쳐야’만 합니다. 바오로 사도의 회개 역시 눈이 멀고 하느님의 권능을 체험하면서 단번에 완성된 것처럼 보이지만, 이전에 중요하게 생각했던 가치들과 우선순위들을 재평가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회개는 윤리 항목 몇 개를 고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처럼 되는 것입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마태 18,3) 어린이처럼 된다는 것은 하느님의 모상을 드러낸다는 것으로, 내재하시는 하느님의 모상을 회복시켜 한층 더 그분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심리학에 따르면, 이 아이는 본래의 자기(self)입니다. 훌륭하고, 거룩하고, 강하고, 능력 있고, 기쁨이 가득하고, 현명하고, 희망에 차 있고, 그 자체가 선물인 삶을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이 아이는 참된 자기, 내면의 아이, 성스러운 아이, 경이로운 아이, 지혜로운 아이로도 불립니다.

 
- 서울대교구 문 종원 베드로 신부님 묵상 글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