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등불의 비유’를 드시며 “누가 등불을 함지 속이나 침상 밑에 놓겠느냐?”고 하십니다. 방을 환하게 하려면 높은 곳에 두기 마련입니다. 선행도 마찬가지입니다. 본인은 남몰래 베풀지라도 언젠가는 드러납니다. 그리하여 그의 미래를 환하게 밝혀 줍니다. 삶의 등불을 켜는 것이지요. 어느 날 공자는 제자들에게 질문합니다. “덕이 높을 것 같은가? 복이 높을 것 같은가?” 제자들은 단숨에 답합니다. “그야 당연히 덕이 높지요.” 그러나 스승의 말씀은 의외입니다. “아니다. 복이 높다.” 제자들이 따지듯 묻습니다. “그렇다면 복 받으려 하지, 누가 애써 덕을 닦으려 하겠습니까?” 제자들의 공격에 공자는 말합니다. “나는 오랫동안 덕을 닦으려 애써 왔다. 그런데 주변에는 별로 힘들이지 않고 겸손의 덕, 절제의 덕, 용기의 덕을 지닌 사람들이 있다. 하늘이 복을 내린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제자들이 다시 묻습니다. “그렇다면 스승님, 어떻게 하면 그런 복을 받을 수 있을는지요?” 공자가 대답합니다. “적선 외에 달리 무슨 방법으로 하늘의 복을 얻겠느냐?” 우리 속담에도 적선을 하면 귀신도 어쩌지 못한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좋은 기운이 감싸고 있기에 악한 기운이 다가서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선행에는 하늘의 힘이 함께합니다. 교리적으로 말하면, 은총이 감싸고 있는 것이지요. 이렇듯 선행과 자선은 사람의 운명을 바꾸어 주건만 많은 사람이 그것을 소홀히 하고 있습니다. 복은 받고 싶어 하면서 정작 그 길은 외면하고 있는 셈입니다. 선행의 등불을 켜야 합니다. 그러면 운명은 밝아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