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의 순교 영성
서서히 박해가 수그러들면서 순교 신앙은 점점 생활 속으로
뿌리를 내렸습니다.
이제 순교 신앙은 꼭 목숨을 바치지 않더라도 그에 못지않은
믿음의 열정으로 어떤 고생과 불이익이라도 하루하루 감수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생활 속의 순교 영성’으로 발전하여 갔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우리 조상들의 신앙에서 다음과 같은 순교 영성을
배우게 됩니다.
첫째,
가정 안에서의 신앙 대물림을 위해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는 영성을 배웁니다.
순교 신앙이 있었기에 그들은 산 속에 지은 움막 안에서 겨울을 나고,
화전을 일구어 얻은 오죽잖은 양식으로 하루를 살아가며, 편히 살고픈 유혹을
물리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부모들은 움막 안에서 굶주림에 우는 어린 아이들을 기도로 달랬으며 자녀들은
자연히 집안의 신앙을 먹고 자라면서 자신의 신심을 키워 나갔습니다.
서적을 구하기 쉽지 않았던 시대에 부모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기도문과 교리 내용,
순교자들에 대한 이야기, 천주 가사(歌辭)의 내용들을 자녀들에게 입으로 들려주면서
신앙을 전수하였습니다.
신앙의 전수를 위해서라면 극기의 모범, 가르치는 수고로움, 함께하는 신앙 실천 등을
기꺼이 도맡았던 것입니다.
둘째,
성사를 받기 위해서라면 어떤 불편함이나 고생도 치르겠다는 영성을 배웁니다.
순교 신앙은 성사를 받으려는 열망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성직자들의 공소 순방 소식을 들으면 신자들은 가족을 이끌고 그 먼 곳에서 어떠한 어려움도
마다하지 않고 한겨울의 언 몸으로 공소를 찾았으며 성직자들은 이들을 맞이하면서 한없는
기쁨에 넘치곤 하였습니다.
산골 깊은 곳의 교우촌 신자들은 성사를 받기 위해 하루 동안 100여 리를 걷기가 다반사였습니다.
셋째,
교리의 실천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희생도 치른다는 영성을 배웁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행하려고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전 재산을 내놓는 것은 물론
노비들을 풀어 주거나 그들과 한 가족처럼 생활하면서 복음을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기근이 심해 굶어 죽는 이들이 많았을 때에도 교우촌 신자들은 끼니를 거르지 않았습니다.
모든 이가 가난한 가운데서도 아무것도 없는 형제들에게 도움을 베풀어 주었고 과부와 고아들을
거두어 주었습니다.
그 한 예로서 수리산 교우촌의 최경환 회장은 가시덤불과 자갈밭을 개간해 얻은 곡식을 교우들에게
나누어주었고, 길에서 어려운 비신자를 만나면 서슴지 않고 애긍을 베풀기로 유명했습니다.
흉년이 되면 주변에 사는 가난한 이들을 백방으로 도와주었으며 과일을 추수할 때가 되면 가장
좋은 것을 골라 이웃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이렇듯이 순교 영성을 삶 속에서 몸소 살았던 장한 신앙인들의 후예인 우리는 이 시대 속에서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오늘도 하늘에서 찬연하게 빛나고 있는 그분들의 신앙 앞에 어떤 선택을 해야 하겠습니까?
- 차동엽 신부 저 「여기에 물이 있다」 에서 발췌(가사방에서 옮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