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고, 쓸쓸하고, 슬프고
오늘도 내일도 선포되는 예수님 말씀의 어조나 톤은 꽤나 슬픕니다.
비장합니다.
언제나 외롭고, 쓸쓸하고, 때로 가혹한 예언자로서의 고된 삶이 엿보입니다.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날도 계속해서 내 길을 가야한다. 예언자가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야 죽을 수 있겠느냐?”
슬픈 운명을 지닌 예언자, 결국 죽어야 완성되는, 그러기 위해서 스스로 사형대 위로
올라서야 하는 고독한 예언자 예수님의 뒷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립니다.
여기 선포된
예수님의 말씀은 십자가 죽음을 당하시기 약 3개월 전에 하신 말씀으로 추정됩니다.
“예언자가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야 죽을 수 있겠느냐?”는 말씀을 통해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을 정확하게 예견하고 계셨음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정확한 날짜뿐만 아니라, 처형장소, 처형방법까지 다 미리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참으로 고통스런 시간이었겠습니다.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죽음의 시각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피하기를 원하셨다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었던 죽음이었습니다.
시간이 아직 넉넉하게 남아있었기 때문에 그 혹독한 십자가형을 피해 배를 타고
멀리 해외로 피신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 끔찍한 사형수로서의 처형절차를 피하기 위해 유대인들과의 정면 대결구도를 접고
조용히 산속으로 들어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결코 물러서지 않으셨습니다.
정면 돌파를 단행하십니다.
흔들리지 않고 꿋꿋이 당신의 길을 걸어가십니다.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 날도 계속해서 내 길을 가야 한다.”
예수님은 처절한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장소, 유대 전통의 본산이자 갖은 악과 음모,
위선이 판을 치는 최후의 장소인 예루살렘으로 발길을 옮기십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늘 예수님과 동고동락했지만 예수님의 그런 깊은 속내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보니 함께 고통을 나눌 수도 없었습니다.
위로의 말 한마디조차 던질 수 없었습니다.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그로 인한 영육간의 괴로움’은
오로지 예수님 홀로 견디고 감당해야 할 몫이었습니다.
예정된 죽음의 길, 예수님께서는 결코 피하지 않으시고 용감하게 굳세게 걸어가셨습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제시하신 그 길을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제대로 걸어가셨습니다.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철저한 순명, 여기에 예수님의 위대성이 있습니다.
내 뜻이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추구하고, 목숨 바쳐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수행한 예언자로서의 완성된 삶,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삶이었습니다.
- 양승국스테파노 신부님/살레지오회(가사방에서 옮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