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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복음 묵상(마태오 8,23-27)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아모스  3,1-8; 4,11-12      마태오 8,23-27 "바람에 흔들리는 것이 어디 꽃뿐이더냐!"  언젠가 우리나라가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울 때, 서울의 한 도심을 지나다가 이런 글귀를 본적이 있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것이 어디 꽃뿐이더냐! 꽃은 바람에 흔들리면서 피어난다.’ 제게 그 글귀는 당시 시대 상황과 어우러져 인상 깊게 다가왔습니다. 시간이 흐른 지금도 현수막 내용처럼 바람에 흔들리는 것은 꽃뿐이 아닌 듯합니다.신앙인들도 고통 앞에서, 죽음 앞에서, 유혹 앞에서 흔들릴 수 있습니다. 삶이 흔들리고,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믿음도 흔들릴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예상치 못한 큰 풍랑이 일어 배가 파도에 뒤덮이는 상황에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마음이 흔들리는..

오늘의 복음 묵상(마태오 8,18-22)

연중 제13주간 월요일 아모스 2,6-10.13-16      마태오 8,18-22   율법 학자 가운에 한 사람이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하고 스승으로 모시고 제자의 길로 나서겠다고 합니다. 명성이 높은 율법 학자들을 찾아가 함께 머물면서 제자의 삶을 살던 것이 당대의 전통인 점을 생각하면, 이 율법 학자도 예수님께서 머무시는 곳으로 따라가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은 당혹스럽습니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 세상 그 어떤 곳에도 예수님께서 편히 쉬시며 머리를 기대실 보금자리가 없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에는 당신이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살면서 머무르실 영원한 곳은 이 세상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떠나 자신..

오늘의 복음 묵상(마르코 5,21-43) - 연중 제13주일(교황 주일)

연중 제13주일 (교황 주일) 지혜서 1,13-15; 2,23-24     2코린토 8,7.9.13-15     마르코 5,21-43 "믿음 속에 숨은 약속"“인간의 행복은 신앙의 대상이자 목적인 하느님을 뵈옵는 데 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인간의 목적으로 설정하셨으므로 하느님과 합일하는 것이 인간의 행복이요 목적이다. 그러나 이 목적은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것이므로 하느님께서 먼저 길을 열어주시지 않으면 거기에 도달할 수 없다.” 라고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복잡하고 어지럽고 힘든 요즘의 삶에, 우리는 행복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또한 행복을 얻고 누리기 위해 꾸준히 무엇인가를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행복은 무엇이며, 그 행복을 얻기 위해 무엇을..

오늘의 복음 묵상(마태오 16,13-19) -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사도행전 12,1-11    2티모테오 4,6-8.17-18    마태오 16,13-19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28,19-20).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씀입니다.베드로와 바오로 사도는 이 사명을 수행하며 참으로 많은 시련을 겪어야 하였습니다. 감옥살이도 하였고, 매질도 당하였으며, 동족들에게서 모욕과 멸시를 받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명령에 뒤따르는 약속처럼 —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28,20). — 두 사도의 고된 여정에는 늘 주님의 손길이 머물고 있음을 오늘의 독서 말씀..

오늘의 복음 묵상(마태오 8,1-4) - 성 이레네오 주교 학자 순교자 기념일

연중 제12주간 금요일 2열왕기 25,1-12    마태오 8,1-4 : 한센병 환자의 치유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2절) 한센인이 예수님께 드린 말씀이다. 그는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긴다. 자신이 치유되든 안 되든, 모든 것은 예수께 달렸다. 치유의 권한은 주님께 있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3절) 하시며 치유해주신다. 이 말씀은 당신의 권한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이며 한센인의 추정을 확인해 주신다. 이 치유 사화를 통하여 우리는 하느님께서 인간에 대하여 가지신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다. 그분은 우리 인간이 어떤 경우에도, 어떤 상황에 부딪힌다고 하더라도 당신의 자녀로서 사랑하고 계시는 분이다.“다만 사제에게..

오늘의 복음 묵상(마태오 7,21-29)

연중 제12주간 목요일 2열왕기 24,8-17   마태오 7,21-29 :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이라야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21절)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우리가 착하게 참 열매를 맺지 못하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내게서 물러들 가라. 불법을 일삼는 자들아!”(22-23절) 예수님은 하느님의 이름과 능력을 빙자하여 눈에 보이는 감각적인 치유나 기적을 행하는 것이 하느님과 가까이 있고, 하느님을 제대로 섬기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자들에게 경고하신다. 처음에는 제대로 믿고 덕을 쌓으며 기적을 일으키고 마귀도 내쫓을 수 있었을지 모르나, 나중에는 자기를 내세우는 거짓 모습..

오늘의 복음 묵상(마태7,11-20)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2열왕22,8-13;23,1-3  마태7,11-20  제1독서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이스라엘을 쇄신하고자 한 요시야 임금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분열된 유다 왕국의 16대 임금이 된 요시야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발견된 율법서의 내용을 듣고서, 그들의 조상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제대로 실천하지 않았기에 주님의 진노가 내렸음을 선언합니다.이어서 모든 백성을 데리고 성전에 올라가 계약 책의 모든 말씀을 읽어 주고, 주님을 따라 걸으며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그분의 계명과 말씀을 실천하기로 주님 앞에서 계약을 맺습니다. 온 백성도 이 계약에 동의합니다. 이후 요시야 임금은 하느님 말씀을 ..

오늘의 복음 묵상(마태오 18,19ㄴ-22) -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신명기 30,1-5      에페소 4,29―5,2      마태오 18,19ㄴ-22 : 기도와 용서  오늘 독서 복음은 한국 가톨릭교회가 남북통일을 위하여 그리스도인으로서 통일을 준비하는 자세가 담겨있다. 회개와 용서를 통한 사랑의 생활과 믿음의 기도로써 민족화합과 통일을 기원하자. 일제의 손에서 우리에게 광복을 주신 하느님께서 자비로이 평화통일을 이루어 주실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회개하고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믿으며 사랑의 생활을 해야 할 것이다. 사도 바오로는 하느님께서 용서하셨듯이 서로 용서하라고 하며 분노와 욕설과 악의를 내어버리라고 한다. 북한의 위협적인 태도가 용서와 신뢰를 회복하기에는 큰 걸림돌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북한의 어떤 주민이 “남한..

오늘의 복음 묵상(루카 1,57-66.80) -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이사야 49,1-6    사도행전 13,22-26    루카 1,57-66.80 :  기 이름은 요한이다  오늘은 세례자 요한의 탄생 대축일이다. 세례자 요한은 “여드레째 되는 날”(59절) 할례를 받는다. 여드레째 되는 날에 받은 할례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시는 날 모든 피조물이 죽음에서 풀려나는 것을 예시한다. 요한이란 하느님의 은총 또는 은총을 지닌 자라는 뜻이다. 이 이름은 요한이 장차 선포할 복음의 은총, 그 은총을 세상에 내리실 주님을 가리킨다.  또한 즈카르야가 요한의 이름을 확인해 주고 입이 열려 말을 하고 하느님을 찬미한 것은 그 아기의 이름이 지닌 힘이었다. 요한 세례자는 자기 아버지에게 목소리를 되찾아 주었고, 사제에게 말하는 능력을 회복시켜 주었다. 가브리엘..

오늘의 복음 묵상(마르코 4,35-41) - 연중 제12주일

연중 제12주일 욥기 38,1.8-11    2코린토 5,14-17    마르코 4,35-41: 왜 그리 겁이 많으냐?  오늘 제1독서와 복음은 바다가 배경이 되고 있고, 그 바다는 하느님만이 다스릴 수 있으며, 인간의 능력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대상이며, 오직 하느님만이 소용돌이치는 바다를 다스릴 수 있는 분이심을 드러낸다. 이제 하느님 앞에 인간은 자기 자신의 한계를 느끼며, 주님을 신뢰하며, 그분의 사랑과 권능을 알아야 한다. 물질만능주의와 과학의 발달은 하느님을 제쳐놓고 그분을 무용지물로 만들면서 모든 것을 자신들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현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연 앞에 얼마나 무능력한가? 인간은 광대무변하고 찬란히 빛나는 삼라만상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존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