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사랑과평화

미나와 탈렌트 비유

까치산 2008. 11. 21. 12:34




     
    미나와 탈렌트 비유 
                              (루카 19,11-27)
    능력의 사용에 관한 비슷한 주제로 비유를 든 말씀이 마태오 복음서와 
    루카 복음서에 나타납니다. 
    그러나 소재와 이야기 전개 방법은 사뭇 다릅니다. 
    마태오 복음서에서는 탈렌트라는 큰 화폐 단위를 써서 비유말씀을 전개했으나 
    루카 복음서에서는 그보다는 적은 화폐 단위를 써 약간 현실성을 드러냈습니다.
    한 미나도 사실 적지 않은 돈입니다. 
    근로자가 100일 일하여 얻을 만큼의 양입니다. 
    그러나 한 탈렌트는 6,000 데나리온이어서 근로자가 대략 20년간 일해야 얻는 
    실로 어마어마한 양입니다. 
    그것도 다섯 탈렌트, 두 탈렌트, 한 탈렌트씩 각자 다르게 나누어 줍니다. 
    이렇게 마태오 복음서에 실린 비유는 주인이 종들에게 맡긴 그 양이 
    엄청나게 크고 각각 다르게 맡긴 것으로 해서 주인이 종의 능력을 
    헤아려 그에 걸맞게 나누어 주었으며 가장 적게 받은 종도 
    그 양이 충분히 크고 많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루카 복음서에서는 열 미나를 열 사람에게 한 미나씩 골고루 나누어 줍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 차이를 통해 몇 가지 내용을 묵상할 수 있습니다. 
    마태오 저자는 통이 크고 과장이 심한 어투를 보였으며 
    루카 저자는 현실성 있게 문맥을 전개하였다는 것입니다. 
    또 루카 저자는 당시에 청중이 알고 있었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비유 말씀을 전개했습니다. 
    헤로데 대왕이 죽고 아들들이 분봉왕에 즉위하여 통치할 적에 아르켈라오는 
    유다 지역을 다스렸는데 하도 포악하게 굴어 유다 백성이 로마 황제에게 
    상소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로마로 불려 올라갔으며 그러고 나서부터 유다 지역은 
    로마에서 파견한 총독이 다스리기 시작했습니다. 
    빌라도가 유다 총독이 되어 유다 땅을 다스린 연유도 여기서 비롯했습니다. 
    아마 이 비유를 듣는 예수님 당시 청중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면서 쉽게 
    알아들었을 것입니다. 
    아울러 루카 저자는 평등 분배에 관심을 두었나 봅니다. 
    열 명의 종에게 똑같이 한 미나씩 나누어 주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평등과 공평’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연 똑같이 나누어 주는 것과 각자 능력에 걸맞게 나누어 주는 것 중 
    어느 것이 합당하냐 하는 문제입니다. 
    얼핏 서로 상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에서는 언제나 대립과 
    갈등을 가져오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중등교육의 평준화냐? 
    아니면 개인 능력에 맞는 교육 기회를 주는 것이 공평한 것이냐? 
    하는 문제입니다. 
    언제나 이 문제를 두고서 서로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두 복음서는 이 난해한 질문에 답할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 같습니다. 
    마태오 복음서에서는 주인께서 우리에게 넘치도록 충분히 주었다는 
    사실을 말하며
    루카 복음서에서는 똑같이 받았어도 서로 다르게 처신한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결국 못되고 악하며 게으른 종은 이러나저러나 자신이 받은 기회를 
    핑계를 대며 날려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종은 이런 결과를 자신에게서 찾지 않고 주인이 못됐다는 사실도 
    아닌 내용으로 탓하며 남에게 돌렸습니다. 
    인생에서 우리에게 찾아온 기회가 불평등하게 보이는 적이 많습니다. 
    다른 이는 재산과 능력을 커다랗게 받았는데 나는 왜 이리 부족하게 
    받았는지 못마땅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우리가 받은 생명의 은총이 얼마나 큰지 
    또 우리가 누리는 자연의 혜택이 얼마나 평등한지 생각해 보라는 
    비유말씀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받은 능력 중에서 제대로 사용도 못하고 낭비하는 것이 많습니다. 
    두뇌 생리학자들은 인간이 자신의 두뇌 능력을 10 퍼센트도 쓰지 못하고 
    죽는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존경하는 아인스타인 같은 이가 그 정도 썼다고 합니다. 
    어떤 이유에서건 우리는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은 사람은 누구나 어떤 위기 상황에 처했을 때 
    마음먹기에 따라 긍정적으로 반응하고 낙관적으로 헤쳐 나갈 능력이 있으며 
    나아가 이웃을 사랑할 능력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세상만사를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뜻으로‘일체유심조
    (一切唯心造)’라고 표현합니다. 
    얼마나 멋진 말입니까? 
    그런데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부정과 비관으로 빠져 인생을 허비하고 
    몰락하고 맙니다.
    우리는 사랑이 거짓이 없고 조건이 없으며 영원하다는 것을 잘 압니다. 
    또 빈부, 권력, 외모, 건강 등 외부 환경 조건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랑은 자신 안에서 그 근원을 찾게 됩니다. 
    그래서 참된 사랑은 오르내림의 변덕을 보이지 않습니다. 
    결국 사랑한다는 것이 자신의 존재 자체가 됩니다. 
    사랑은 용서와 보살핌의 세계로 가는 길입니다. 
    사랑은 지적인 것도 아니고, 표면 의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서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나아가 사랑은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려 주고, 그 동기의 순수성 덕분에 
    자신과 타인에게 크나큰 성취를 이루게 합니다. 
    결국 나와 네가 아닌 생명으로 하나 되는 신비를 체험하게 합니다.
    커다란 사랑의 탈렌트를 누구나 넉넉하게 받았다는 사실은 참으로 변함이 없습니다. 
    도저히 그럴 수 없는 것 같은 환경에 처한 이들이 기쁘게 이웃에게 사랑을 
    나누어 주는 장면을 목격할 때 우리는 뜨거운 감동을 받습니다. 
    그들은 돈이 많아서도, 권력이 높아서도, 몸이 건강해서도가 아니라 
    오직 인간 됨이 그렇기에 사랑을 나누는 것입니다. 
    그들을 보면 우리 자신도 사랑에 물드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렇게 그 사랑의 탈렌트를 나누어 사용하는 일이야말로 우리에게 맡겨진 
    일이라 하겠습니다. 
    -  윤경재ㅡ (가사방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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