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주일
이사야 62,1-5
1코린토 12,4-11
요한 2,1-11
"우리의 신앙도 성모님의 신앙처럼 끊임없이 성장해야 합니다!"
카나 혼인 잔치에서 벌어진 예수님과 성모님 사이의 대화는 너무나 많은 복선과 의미가 깔린 내용이기에 잘 새겨서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모님께서 예수님께 드린 청부터 좀 이상합니다. 성모님은 평소 아들 예수님의 성숙한 동반자로서 부담을 주거나 분위기를 난감하게 만들지 않으셨습니다.그런데 오늘은 특별합니다. 꽤 부담스러운 청을 예수님께 드리고 있습니다.
“포도주가 없구나.”(요한 2,3)
성모님의 은근한 압박에 맞선 예수님의 대응도 만만치 않습니다.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요한 2,4) 예수님께서는 아직 아버지로부터 공생활을 시작하라는 신호를 받지 않았던 것입니다.아직은 세상 사람들 눈에 띄면 안 되는 것입니다.아직 공개석상에서 기적을 행할 때가 아니었기에 어머니의 부탁을 넌지시 거절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따라 성모님도 물러서지 않으십니다.
결국은 자신의 의도를 관철시키십니다.예수님으로부터 완전한 동의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일을 계속 진척시킵니다.지혜로운 어머니셨기에, 예수님께 또 뭐라 한마디 하면 서로 난감해질 것이 뻔하니,이번에는 일꾼들을 불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요한 2,5)
어찌 보면 오늘 우리 각자를 향한 성모님의 권고 말씀입니다.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오늘 우리는 부단히 질문을 던져야 하겠습니다.예수님께서 오늘 내게 시키는 것이 무엇인지? 예수님께서 오늘 내게 바라시는 바는 무엇인가? 예수님께서 성모님을 향해 사용하신 호칭, “여인이시여”라는 표현이 꽤 마음에 걸립니다. “여인이시여”라는 호칭은 그동안 예수님께서 성모님에게 사용해 오셨던 호칭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예수님의 갑작스러운 호칭 변화에 성모님께서도 꽤 당혹감을 느끼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인이시여” 라는 말씀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는 이런 것이 아닐까요. 이제 예수님과 성모님 사이는 서서히 새로운 관계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육의 관계를 넘어 영의 관계로 옮아가는 것입니다. 종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차원의 모자 관계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머지않아 예수님의 본격적인 공생활이 시작될 것입니다.
성모님의 영적 여정 역시 가야 할 길이 꽤 남아있습니다. 성모님의 믿음 역시 더 쇄신되고 더 깊어져야 할 과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아직도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으셨던 성모님이셨습니다. 아직도 세밀한 하느님의 계획을 완벽하게 파악하지 못하셨던 성모님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포도주를 많게 하시는 기적을 통해 일단 성모님의 인간적 체면을 살려주시지만, 진정한 의도는 그게 다가 아니었습니다.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라는 말씀을 통해 기적이나 체면을 살리기보다 아버지의 뜻에 순명하는 것이 더 우선적이고 더 중요한 일이라는 강조하십니다. 성모님의 완곡한 청을 거절하지 않으면서도 “여인이시여”라는 호칭을 통해 살짝 거리를 두는 예수님의 모습은 성모님에게는 새로운 하나의 초대입니다.
‘어머니, 그간 저를 돌봐주시느라 참으로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쉽고 안타깝지만 떠나갈 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어머니께서도 잘 준비하셨으면 합니다. 이제 어머니의 신앙이 한 차원 승화될 순간입니다. 이제 인간적인 눈이 아니라 영적인 눈, 육적인 관계보다는 영적인 관계, 세상적인 뜻보다는 아버지의 뜻을 먼저 생각하셔야 할 것입니다. ’이런 의미를 함축한 표현이 “여인이시여”가 아닐까, 하는 묵상을 해보았습니다.
우리의 신앙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성모님의 신앙처럼 끊임없이 성장해야 합니다. 하느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성모님과 예수님 사이처럼 역동적이어야 하고, 진취적이어야 합니다. 서로를 속박하고 자신 안에 가두어두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자유롭게 해주고, 서로를 키워주는 그런 관계여야 할 것입니다.
- 살레시오회 양 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묵상 글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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