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
사도행전 22,3-16
마르코 16,15-18
"바오로 사도의 그 거룩한 삶의 전환!"
바오로 사도의 신앙 여정은 정말이지 극적이고 드라마틱합니다.
그는 원래 유다인 중의 유다인이었으며 바리사이 중의 바리사이였습니다. 유다교 측에서보면 전도양양한 청년 지도자였습니다. 이런 그가 주님께서 낚아채십니다.
그 과정도 정말이지 놀랍습니다.
그날도 다마스쿠스란 도시에 그리스도교인들이 비밀집회를 지속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분기탱천한 그는 그들을 체포하기 위해 자신의 애마(愛馬)를 타고 전속력으로 달려가고 있었습니다.정신없이 말달리던 어느 순간 그는 갑작스런 몸의 이상증세를 느끼며 낙마(落馬)하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의 강골이었던 그는 갑자기 온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체험과 동시에 두 눈이 멀어버리게 됩니다.
갑작스런 인생의 밑바닥 체험을 하게 된 것입니다.
다행스럽게도 그는 갑작스럽게 닥쳐온 인생의 가장 밑바닥에서 생생한 예수 그리스도의 실체와 대면하게 됩니다. 그리고 순식간에 일생일대의 전환점, 다시 말해서 회심의 계기를 마련하게 됩니다. 사실 ‘바오로’라는 이름의 뜻은 ‘작고 보잘 것 없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당시 하층민들이나 종들이 애용하던 이름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오로 사도의 원래 이름은 무엇이었습니까? 사울이었습니다. 사울이란 ‘크고 위대한 사람’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왕가에서나 사용되는 이름이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위풍당당하던 사울이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낙마한 후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하면서 바오로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참으로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스스로를 귀족, 잘 나가던 사람으로 여겼던 사울은 하느님의 크신 자비를 체험하고 나서 깨달았습니다. “아, 정말이지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구나. 티끌이요, 종이요, 작은 자, 무(無)였구나.” 하고 깨우치면서 자신의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작고 보잘 것 없는 사람이란 의미의 바오로로 바꾼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서간을 통해서 우리는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대충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엄청난 에너지의 소유자였습니다. 스포츠에 무척이나 심취해 있었습니다.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서 일을 하라면 답답해 미칠 정도로 활동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코린토 1서에 등장하는 표현입니다.
“나는 목표가 없는 것처럼 달리지 않습니다. 허공을 치는 것처럼 권투를 하지 않습니다. 나는 내 몸을 단련하여 복종시킵니다.”(1코린 9,26-27) 그리고 어느 날 노인이 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훌륭하게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습니다.(2티모 4,7-8) 뿐만 아니라 회심한 이후에도 복음 선포자로서만이 아니라 천막을 만드는 전문 직업인으로서의 삶을 병행하면서 자신의 생계를 스스로 책임졌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투잡’을 한 것입니다.
이런 바오로 사도를 일컬어 학자들은 ‘백 개의 팔을 지닌 사람’이라는 별명까지 붙였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회심 여정에서 우리가 눈여겨봐야할 대목이 한 가지 있습니다. 한때 혈기왕성한 촉망받는 유대교 젊은이로서 율법을 준수하고 그리스도교인들을 박해하는 일에 선봉장 역할에 충실했던 그였습니다. 삶의 모든 에너지를 주님을 박해하는 데 앞장섰던 그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낙마 이후 일련의 회심과 쇄신의 과정을 거친 후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말을 갈아탑니다.
바오로 사도는 마침내 이런 고백에 도달하게 됩니다. “나에게는 삶이 곧 그리스도이며 죽는 것이 이득입니다.”(필리 1,21)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것들을 쓰레기로 여깁니다.”(필리 3,8) 오늘 우리는 바오로 사도의 그 거룩한 삶의 전환을 어떻게 내 삶에 적용시킬 것인가 한번 고민해보면 좋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의 에너지를 주로 어디에다 집중시키는지 반성해볼 일입니다.
혹시라도 언젠가 모두 썩어 없어질 유한한 육체에만 모두 투자하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하루하루 재미거리만 찾아다니는 것은 아닌지 크게 반성이 됩니다. 오늘 다시 한 번 우리 삶을 주님의 뜻에 걸맞게 재구성하는 영적인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겠습니다.
- 살레시오회 양 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묵상 글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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