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받은 무화과나무
"만일 그때 가서도 열매를 맺지 못하면 베어버리십시오."
(루카 13,1-9)
성서에 '무화과나무'가 처음 나오는 장면은 창세기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이 따먹지 말라고 이르신
선악과를 먹은 후 무화과나무 잎을 따서 몸을 가렸던 것입니다.
"그러자 두 사람은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알몸인 것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앞을 가렸다."(창세3,7)
그런 의미에서 무화과나무 잎은 인간이 만든
최초의 옷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듯 인류에게 최초의 의상을 탄생케 한 무화과나무에 대해서
예수께서는 세 번씩이나 비유를 들어 말씀하고 계십니다.
처음에 주님께서는 무화과나무를 비유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무화과나무를 보고 배워라. 가지가 연해지고
잎이 돋으면 여름이 가까워진 것을 알게 된다.
이와 같이 이런 이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사람의 아들이 문 앞에 온 줄을 알아라."(마태24,32-33)
이렇게 무화과나무를 빗대어 심판의 날을 경고하신
주님께서 보다 강해지십니다.
하느님이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는 베어버리겠다 하시자
예수님은 한 해만 더 맡겨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도 열매를 맺지 못하면 그때 가서 베어버리라고 애원하시고는
'회개하라. 회개하지 않으면 너희도 피를 흘리며
비참하게 죽을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무화과나무를 빗대어
말씀하시고 나서는 보다 강경해지십니다.
그때 예수께서는 배가 고프셔서 성안으로 들어오시다가
무화과나무를 발견하십니다.
열매를 따먹으려 하셨지만 잎밖에 없었으므로
"이제부터 너는 영원히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시자
무화과나무는 곧 말라버립니다.(마태21,19)
예수께서 어째서 세 번씩이나 무화과나무를 빗대어 말씀하셨을까요.
그뿐 아니라 사랑 그 자체이신 예수님께서 어째서
마지막에는 저주하여 무화과나무를 말라 죽게 하셨을까요.
그것은 그분을 믿는 우리가 바로 무화과나무이기 때문입니다.
무화과나무인 우리는 시대의 징표를 읽어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워옴을 선포할 의무가 있습니다.
또한 무화과나무인 우리는,어떻게 해서든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 우리의 둘레를 파고 거름을 주는
주님의 마지막 소원대로 쓸데없이 땅만 썩히지 말고
회개하여 열매를 맺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무화과나무인 우리가 거듭나서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그리하여 사랑에 굶주린 주님의 시장기를 채워주는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우리는 마침내 주님으로부터 이런 절망의 말씀을 듣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제부터 너는 영원히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여러분, 우리 모두는 주님께서 심은 무화과나무입니다.
그분을 믿으면서도,
우리를 살리려는 그분의 뜨거운 사랑을 받으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잎사귀만 무성할 뿐 꽃도 피우지 못하고,
그리하여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화과나무에서 유화과(有花果)나무로 바뀌지 못한다면
우리는 마침내 베어져 말라 죽게 될 것입니다.
주님, 아아 사랑하는 주님,
나를 꽃피우게 하소서. 그리하여 열매 맺게 하소서.
글 : 최인호 베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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