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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여백 / 박 명순

까치산 2024. 10. 25. 09:53

 

 

♣가을의 여백♣


                                                - 박 명순 -

 
그득하게 그러안고 있던 모든 것들을
하나 둘 떨구어 버리며
무엇을 남겨주려 가을은
고독을 삼키고 있는 것일까

 
넘치면 비우고 고이면 퍼내라고
그렇게 바람에 훌훌 털어버리며
여백의 미를 알려주는 것일까

 
찬란함에 물들던 프라타너스의 잎들이
바람에 버석거리며 거리를 뒹굴때
빈 가지엔 찬 바람만이 가득 걸리어

 
새 날을 준비하려 움츠리고 있으니
한꺼풀 한꺼풀 벗어버리며
알몸뚱이로 당당한 여백의 인생을 위하여
난 무엇을 준비하여야 한단 말인가

 
거짓으로 치장하던 잎들을 거두고
나신으로 하늘앞에 나서면
떳떳한 인생이 될 수 있을까

 
화장으로 곱게 그려놓던
젊음을 지우고 나면
뒤안길에는 여백의 미소가 남아 있을까

 
그날을 위하여 준비를 하라
가을바람은 자꾸만 재촉을 하는구나
거짓의 가면을 벗어버리고
여백을 드리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