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사랑과평화

염불보다 잿밥

까치산 2008. 9. 10. 09:46





     
    
                           - 이현철이냐시오신부님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그들 손에 죽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분께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마르 9,30-37) 
    스승께서는 사람들 손에 넘겨져 죽을 것을 말씀하시는데 제자들은 
    자리다툼만 하였습니다. 
    염불보다는 잿밥에만 신경을 쓰는 꼴입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은 뒷전에 두고 제 잇속만 차리고 있었습니다. 
    그만큼 제자들은 스승 예수의 정체를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자기들이 그간 배워오고 생각한 나름으로 재단하고 계산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이 지녔던 메시아像을 떨쳐버리기 어려웠습니다. 
    영광의 통치자로 오셔서 이 세상을 정의로 다스리실 분이라고 
    철석같이 믿었습니다. 
    그때가 되면 모든 것을 희생하고 예수님을 따랐던 자신들에게 
    상급으로 한 자리씩 주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의 귀는 듣고 싶은 것만 듣는 편리한 기능이 있습니다. 
    쓴 소리는 여간해서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진리의 소리라도 흘려듣고 맙니다. 
    인간이 진리에 귀를 닫고 잘 깨닫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복음말씀입니다. 
    섬김과 베풂이 하느님께서 제일 바라시는 일이라는 깨달음입니다. 
    철학자 에리히 프롬은 인간이 오해하는 것 중에 아주 뿌리 깊은 것이 
    베풂을 손해 보는 것, 희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인간의 관계를 비생산적인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베풂을 부정적으로 
    본다고 합니다. 
    그러나 베풂은 우리에게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끼게 만들어주고, 
    활력과 창의성을 일깨워 준다고 합니다. 
    봉사에 나섰던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봉사는 자신이 했는데 결국 사랑과 혜택은 자신이 받았다는 소감입니다. 
    비록 몸은 힘들고 지쳤지만 어느 때보다 사는 보람이 느껴져 
    행복했다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공생활 내내 말씀하신 내용이 바로 우리의 관념을 
    바꾸어 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종교라는 이름으로, 사회적 정의라는 이름으로, 힘이라는 이름으로 
    지녀왔던 가치관들을 새롭게 바라보라는 요구이었습니다.
    예수는 초월적 담론을 이야기하거나, 성전과 토라, 민족의 중흥 등을 
    말하기보다 지극히 평범한 자연과 일상사로 하느님의 일을 드러냈습니다. 
    하늘을 나는 새, 이름 없는 들풀, 어린아이, 농사일, 자연현상 등등을 
    빌어 하느님 나라가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우리가운데 
    와 있다하고 설명하셨습니다. 
    어린아이를 받아들이는 것이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사 안에서 하느님의 
    뜻으로 발견하려는 눈을 키워야 하겠습니다.
    민족과 교회와 정의와 철학같이 고차원적인 것에만 눈길을 두기보다 
    가난한 서민들이 진정 행복하게 살 수 있고 꿈과 보람을 느끼며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몫입니다. 
    출처: 윤경재 -  굿 뉴스ㅡ  (가사방에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