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사랑과평화

오늘의 복음 묵상(루카 11,29-32)

까치산 2024. 10. 14. 10:01

 

 

연중 제28주간 월요일 

갈라티아 4,22-24.26-27.31─5,1     
루카 11,29-32

 


지난 금요일 복음을 떠올려 보면,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예수님께 요구한 이들이 있었습니다(루카 11,16 참조).

사실 그들은 이미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는 기적을 목격하고도 더 자극적이고 특별한 표징을 요구한 것입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이 오늘 복음에 나옵니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이 세대 사람들에게 그러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께서 ‘표징’이심을 강조하십니다. 

마치 요나 예언자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하나의 표징으로 인식된 것처럼 말입니다. 요나가 처음 하느님의 명령을 피하여 달아난 우여곡절의 역사는 차치하고(요나 1─2장 참조), 결국 예언자는 하느님의 명령대로 니네베로 가서 그들에게 닥쳐온 심판을 선포합니다.

“이제 사십 일이 지나면 니네베는 무너진다!”(3,4) 요나는 회개하라고 선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곧 멸망하리라고 외쳤습니다. 그런데 니네베 사람들은 그런 요나를 미쳤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의 외침을 중요한 표징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모든 백성이 자루옷을 입고 단식하며 결국 하느님의 마음을 돌리는 데 성공합니다. 요나는 그들에게 어떤 기적도 보여 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니네베 사람들은 그의 단순한 외침에서 표징을 읽어 낼 수 있었습니다. 반면에 오늘 복음에 언급되는 ‘이 세대’의 유다인들은 요나의 외침보다 훨씬 권위 있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심지어 그분의 놀라운 기적들을 직접 눈으로 목격하고도, 계속해서 더 큰 표징을 보여 달라고 요구합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주님을 믿기 위함이니 더 확실한 표징을 보여 달라고 청할 때가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주신 생명의 말씀들, 그리고 그분께서 친히 세우신 은총의 성사들은 우리에게 충분한 표징이 되고도 남습니다. 더 자극적이고 새로운 무엇을 청하기보다는
이미 주어진 것들을 잘 식별할 수 있는 은사를 청합시다.

 
 - 인천교구 정천 사도 요한 신부님 묵상 글에서 -